송재학
세상의 모든 낙타들은 다 길들여졌으나 고비 사막 어딘가 야생 낙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신기루 따라 걷는 야생 낙타는 타박타박, 그 소리는 사막 아래의 지하수 물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한때 이곳이 바다였듯이 내가 물고기라면 검은 아가미가 가만가만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낙타가 먹는 소소초라는 풀, 사막의 먹을 거리란 뻔한데 그마저 가시가 있는 낙타풀, 다른 짐승이 얼씬도 못하게 심술이 닿은 소소초의 운명은 고비 사막이 자꾸 넓어지는 것과 닮았다 소소초 안에도 모래와 자갈뿐인 사막이 있어 타박타박 야생 낙타가 걸어가고 물고기였던 나는 화석으로 발견되곤 한다 소소초를 씹을 때 낙타의 입은 가시 땜에 피가 흥건하지만, 내 육신은 막 떨어지는 해를 떠받치지 못해 피곤하다
이 시의 탄생지는 생명의 물기란 물기는 다 말려내는 사막. 사막이 고난에 뒤덮인 삶을 상징하는 것은 아주 익숙한 상징이다. 하지만 사막에 자라는 소소초라는 풀은? 경단초라고도 불리우는 이 풀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이 풀에는 가시가 많아서 씹는 낙타의 입에는 피가 가득 고인다고 한다. 그러니 소소초는 시의 제국이 발견한 삶의 고난, 그 상징의 극도가 아닌가 싶다.
소소초말고는 아무런 양식이 없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위장과 입을 피로 물들이는 풀! 더구나 이 풀은 자신의 영토란 영토는 다 사막으로 바꾼다. 살아간다는 일은 사막을 넓혀가기도 하는 것. 사는 것 자체가 사막의 어머니인 것.
한 존재가 존재의 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양식을 넘기며 피를 흘린다면 삶은 얼마나 살벌한 터전인가. 언젠가는 바다였던 사막의 현장을 바라보는 시인은 그 안에 남아있는 물고기의 화석. 장구한 세월 속에서 자연과 삶은 이렇게 뒤엉키며 사막을 만들어 낸다. 장엄사막.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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