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짓일 것입니다// 독 속의 쌀을 싹싹 긁어 굶주린 허공에게// 밥을 지어 먹이자는,' ('불면' 전문)
박라연(58)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빛의 사서함> (문학과지성사 발행)에는 병들고 배고픈,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배고픈 자에게 밥을 먹이는 마음이고, 지친 자들에게 쉴 자리를 내주는 마음이다. 빛의>
'밥'과 '의자'는 이번 시집을 규정하는 두 개의 중요한 열쇳말이다. 시인은 '끼니 걱정/ 집 걱정하는 이웃들을 위해/ 간판 하나 내걸고 싶을 때 있다'('만개한 용기'에서)고 선언하기도 하고, 그믐달이 뜬 밤 하얗게 핀 모란꽃 앞에서 '밥이 자칫 꿈이 되지 못하고 독이 될까 두려워/ 곡기를 끊은 그믐달의 잠 속으로// 맨발로 찾아오신 당신/ 배고픈 마음마다 福 자를 새길 것 같은 밤입니다// 내림 근심만 먹고도 한 번 더 꽃을 피워낸 당신/ 가가호호 패자 부활의 꽃 피워주시려는지.'('그믐달 속에 핀 목단님께'에서)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고층 아파트에 여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자, 그것을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널 수 있는/ 메아리를 낳으려고/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기 시작했다'('품'에서) 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는 날개 다친 고추잠자리 한 마리 살포시 내려앉자 시인은 조용히 검지손가락을 내민다. '심장 박동 수가 비슷해서 굴러온/ 축복이려니, 조심조심 지친 숨을/ 다독여 주었다 기댐과 돌봄 사이에/ 행여 금이 갈까 두려워' ('손가락 의자'에서).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불우하게 컸는데, 나보다 행복하게 자랐던 사람들이 커서 불우해지자 내 불행을 가져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나는 결국 불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제 시의 원동력인가 봅니다"라고 말했다.
1990년 펴낸 첫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이래 그가 보여준 '눈물과 슬픔의 시 세계'(문학평론가 오생근)는 이제 사랑에 대한 배고픔으로 승화됐다. 그의 배고픔이 깊고 잔잔한 여운을 준다. 서울에>
이왕구 기자
사진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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