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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이들이 기록한 '염리동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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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이들이 기록한 '염리동 사는 이야기'

입력
2009.03.1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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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에 한전 서부영업소가 있는데, 거기가 옛날에는 전차 차고였어.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알지? 그게 은방울자매가 부른 '마포종점'인데, 그 마포종점이 바로 거기야."

수민(19)이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마을 토박이 전새채 할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난해 11월 5일, 날짜도 잊지 않았다. 전차가 폐선된 1969년까지 마지막 5년간 전차를 운전했다는 전새채 할아버지는 불쑥 찾아와 "마을에 관한 얘기를 들려달라"고 청한 수민이에게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시대극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전차에 얽힌 에피소드며,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생활상까지, 수민이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노트에 꼼꼼히 받아 적기에 바빴다.

수민이와 일곱 친구들은 지난해 11, 12월 두 달 꼬박 염리동 골목골목을 누비며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했다. 그 기록들이 모여 <염리동 마을 이야기> 라는 아주 특별한 책으로 묶여 나왔다.

12일 오후 염리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는 수민이를 비롯한 저자들은 물론, 기꺼이 그들의 취재원이 돼주었던 마을 주민 50여명이 참석해 기쁨을 나눴다.

책은 '마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아이들이 나름대로 풀어놓은 글들로 시작한다. 이어 염리동에 전해지는 '개바우' 전설, 길게 줄이 늘어섰던 공중변소 등 지금은 사라진 마을의 옛 풍광, '마포종점'을 추억하는 전차운전기사와 소금가게 할아버지 등 마을 터줏대감들의 삶 등이 160쪽 분량의 책에 빼곡히 담겨 있다.

수민이는 연남동에 있는 대안학교 '공간 민들레'에 진학하기 위해 2007년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혼자 서울에 왔다. 역시 대안학교에 다니는 7명의 친구들도 마포에 연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염리동 달동네 탐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여름 염리동주민센터와 서울시대안교육센터가 공동 기획한 '마을 만들기'프로젝트에 지원하면서부터다. 새로운 배움의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이 곧 재개발로 예전 모습을 잃게 될 염리동의 모든 것을 기록하면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갖게 하자는 취지였다.

염리동에는 2013년 말 완공 예정으로 뉴타운이 들어서며 이른 곳은 내달부터 철거가 시작된다. 곧 사라질 마을의 일상을 기록에 남기려는 주민센터는 아이들이 매일 모여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마을의 역사 알기 등 사전조사와 글쓰기 공부까지 마친 8명의 아이들은 11월부터 마을 탐방과 인터뷰에 들어갔다. 오전 9시에 만나 그날 할 일을 점검한 뒤 뿔뿔이 흩어져 마을 곳곳을 누볐다.

오후 6시면 만나 저녁을 함께 하며 그날 취재한 것들을 기록했는데, 늦는 날은 밤 9시, 10시까지 작업이 이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낯선 동네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하루종일 이야기하는 것을 어색해 하던 아이들은 점점 동네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졌고, 시간이 갈수록 동네에 모르는 주민보다 아는 주민이 더 많게 됐다.

"처음 만난 마을 어른이 대성부동산 아저씨였는데요, 그때 엄청 얼어서 질문지 작성해간 것만 줄줄 읽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이 많이 들었어요." 수민이는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가끔 동네 분식집에 들러 밥을 먹고 온다고 했다.

아이들의 홀로서기 과정에는'멘토'라 불리는 3명의 선생님들 공이 컸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개인생활도 포기한 채 늦은 저녁까지 남아 아이들이 글쓰기와 사진ㆍ삽화 배치 등 책 편집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자작업장학교 최경미 교사는 "무작정 동네를 돌며 가장 오래된 가게를 찾아보게 하는 등 최대한 발품을 팔게 했다"며 '아이들이 어리광 부리지 않고 따라준 것은 물론 스스로 의견까지 내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수민이는 "염리동을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공통점은 '정감'인 거 같다"며 "좁은 골목길과 항상 따뜻한 미소로 맞아준 동네분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염리동 마을 이야기> 는 비매품으로 500부가 발간됐는데, 대안교육센터는 4∼5월에 내용을 보완해 일반 도서매장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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