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내정자가 최근 의회청문회에서 "현재 상태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 우리 정부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는 "미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짝사랑'이 들킨 곤혹감을 숨기기 어렵다. 이제라도 미국 조야의 움직임을 잘 읽고 글로벌 자유무역 확대라는 넓은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커크 내정자의 발언은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동차산업 등을 의식해 대선 때부터 공언해온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민주당 정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다며 주미 대사관을 통해 로비단체까지 동원했으나 오히려 한미 FTA 사안도 아닌 '연령제한 없는 쇠고기 수입개방'까지 요구 받는 처지이니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세력은 박수를 칠지 모르나,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거센 보호무역의 파고가 우리 경제를 덮치는 현실을 보면 그들의 단견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미국 언론이 제시한 것은 다행이다. 뉴욕 타임스는 엊그제 사설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커크 내정자의 입장이 모호하다며 세계경제를 회복시킬 교역확대를 위해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 신문은 "보호주의는 더 큰 보호주의를 불러와 경제회복의 기회를 없애게 된다"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느 나라든 무역장벽을 높여 국내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라는 압력과 유혹을 받게 된다. 이런 흐름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무역규모가 지난해보다 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세계은행도 대공황 이후 80년 만에 처음으로 교역규모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경제위기의 발원지이자 수습 책임을 짊어진 미국 정부가 좇아야 할 리더십은 자명하다. 한미 FTA 역시 신의와 이익의 균형이란 원칙 위에 자유무역의 확대라는 명제를 얹어야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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