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회장님께서 일자리도 더 만들고 투자에도 적극 나서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네, 알겠습니다. 기업들도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일자리를 나눌 수 있는 방안이 있는 지, 투자할 여력이 되는 지 더 찾아보겠습니다."(A그룹 B회장)
실물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이 장관이 최근 재계 주요 그룹 회장들과 만나 나눈 대화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11일 재계를 향해 "고통 분담 차원에서 투자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정치권도 연일 '곳간 문'을 열 것을 다그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이러한 전방위 압박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대기업도 중소기업처럼 채무 상환 만기 연장(롤 오버)을 시켜달라"며 조건을 내 세웠다. 정부와 재계의 줄다리기이다.
정부가 재계에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선 것은 지난달부터. 이 장관은 지난달 6일 친정이랄 수 있는 LG의 구본무 회장을 만난 것을 비롯, 최태원(SK) 강덕수(STX) 허창수(GS) 손경식(CJ) 조양호(한진) 이웅열(코오롱) 김승연(한화) 정몽구(현대ㆍ기아차) 구자홍(LS) 회장과 잇따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삼성은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났다.
이 장관은 조 석 성장동력실장이, 각 그룹 회장은 계열사 사장 1명이 수행하는 형식으로 4명만 함께 한 자리는 고용 수출 투자 상생 등을 주제로 한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가장 강조된 부문은 일자리와 투자다. 재계도 28건에 달하는 건의를 내놓았다. 이 장관은 이어 12일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기중앙회 경총 등 경제5단체장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기업이 경제 살리기의 주역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이날 오후5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3월 회장단 회의는 재계의 대응을 논의하는 자리가 돼 버렸다. 그러나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수요가 없는데 무작정 투자만 늘릴 순 없는 일"이라며 "올해 600대 기업이 투자키로 한 87조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회장단 회의 후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도 "기업들 현금성 자산이 70조원을 넘는다고 하지만 1년 내 갚아야 할 차입금이 50조원이나 된다"며 "대기업도 중소기업처럼 롤오버를 해 주면 투자 여력이 생긴다는 총수들 의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정부 압박에도 재계의 화답은 아직 없는 셈이다.
조 회장 연임 후 처음 열린 회장단 회의엔 정몽구(현대기아차) 최태원(SK) 이준용(대림) 조양호(한진) 김승연(한화) 박용현(두산) 박영주(이건산업) 정준양(포스코) 강덕수(STX) 최용권(삼환기업) 김 윤(삼양사) 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편 경제단체들의 모임인 경제단체협의회도 이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올해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최대 역점을 두기로 해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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