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이 뜨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기존의 제주 여행이란 게 대부분 유명 경승지를 찾아 사진 한 번 찍고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 바삐 움직이거나, 기를 쓰고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 '정복욕'을 달성하거나, 아니면 골프장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식이었다.
이제 '놀멍 쉬멍 걸으멍' 찬찬히 제주의 속살을 디디며 차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에서 관광, 여행의 패턴이 조금씩 선진국형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전투같은 일상의 연속처럼 볼거리를 좇아 몰려 다니는 패턴에서 탈피해, 여행을 온전히 편안한 휴식으로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제주에서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딱 알맞은 곳이 최근 문을 열어 소개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에 있는 '카멜리아 힐'이다. 이름 그대로 동백의 언덕이다.
17만2,000㎡의 부지에 온통 동백을 테마로 꾸며놓은 정원이다. 제주서 나고 자란 사업가인 양언보(66)씨가 20여년 직접 손으로 가꿔 일궈낸 동백의 궁전이다. "사업을 하다 어려움이 닥칠 때면 눈 위에 떨어져도 오랜 시간 시들지 않는 동백꽃에서 시련을 이겨낼 힘을 얻었다"는 그가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 동백만을 위한 공원을 조성한 곳이다.
그는 국내 각 지역 동백을 수집했고, 전세계를 돌며 특이한 동백을 모두 모아 가지고 들어왔다. 카멜리아 힐이 보유한 동백은 500여종, 6,000그루나 된다.
꽃봉오리째 떨어지는 일반 동백과 달리 장미꽃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떨구는 사상까(애기동백) 동백이 오솔길 위에 붉은 카펫을 깔고, 하얗게 피어난 카멜리아 유시넨시스는 과연 이 꽃이 동백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동백의 숲 사이로는 화산토인 '송이'를 깔아 놓은 산책길이 놓여 있다. 동백꽃 떨어진 산책로를 따라 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색의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양씨 부부의 이름 끝자를 딴 '보순연지'는 2개의 연못을 지닌 정원이다.
동백꽃과 연못이 이룬 조화가 황홀하다. 곧 꽃잔디와 수선화로 뒤덮일 정원과 맘껏 뒹굴 수 있는 너른 잔디밭 등도 '편안히 거니는 휴식'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카멜리아 힐은 목조주택, 스틸하우스, 제주 전통 초가 등 4채의 펜션도 운영하고 있다. 양정우 마케팅 팀장은 "이곳을 찾는 이들은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질 않는다"고 했다. "펜션에서 쉬고 정원을 거닐며 정말 '쉼'에만 집중한다"는 설명이다.
동백이라고 꼭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을엔 추백, 겨울엔 동백, 봄에는 춘백을 계절에 따라 감상할 수 있다. 봄이 기울어져 동백이 다 지고 나면 정원은 벚꽃과 참꽃으로 다시 화사하게 뒤덮일 것이다.
카멜리아 힐에는 갤러리도 있다. 28일부터 7명의 작가를 초대한 '봄의 동백숲 거닐다'란 주제의 전시회가 열린다. 갤러리 1층에선 양언보씨가 고안한 동백차를 맛볼 수 있다. 새끼손톱만하게 올라온 동백꽃봉오리 순을 따서는 가마솥에 찌고, 마당에 한지를 깔고 널어서 제주의 볕과 바람에 말리기를 여러 번 거쳐 만든 차다.
그윽한 향의 동백차는 속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양씨 부부가 직접 동백 열매를 짜서 정제한 동백기름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입장료 6,000원. 펜션 1박에 주중 15만~20만원, 주말 20만~25만원. www.camelliahill.co.kr (064)792-0088
서귀포=글·사진 이성원기자
■ 제주 "흑돼지 육질부터 달라요"
섬과 돼지는 궁합이 잘맞나 보다. 일본 오키나와의 돼지가 유명하듯 제주도도 똥돼지라 불렀던 흑돼지가 이름값을 한다.
제주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뭍에서와 비교가 안될 정도.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훨씬 즐겨 먹는다. 돼지고기를 넣고 끓이는 돼지국수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다.
공항서 5분 거리인 신제주 노형동 일대가 최근 흑돼지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관광객보다는 주민들이 즐겨 외식을 즐기는 곳이다. 저녁이면 몰려드는 차들로 교통 정체를 빚을 정도다. 이곳의 흑돼지 전문점 중 '늘봄흑돼지'는 지난 1월 문을 열었지만 금세 입소문을 타고 많은 단골을 확보한 맛집이다.
주 메뉴는 삼겹살 목살 등 숯불구이. 현지인들은 "삶아 먹는 돔베고기는 관광객이나 찾지 돼지고기는 역시 숯불에 직화로 구워 먹을 때 제일 맛있다"고 말한다.
고깃집 맛의 비결은 역시 싱싱한 고기에 달렸다. 이 집은 '길갈축산'이란 곳에서만 고기를 공급받는다. 길갈축산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흑돼지를 시작해 제일 많이 사육하는 곳이다.
길갈축산의 고기를 납품받는 곳은 서울의 현대백화점과 '늘봄흑돼지'뿐. 가장 비싼 값에 팔지만 수량이 달려 못 파는 곳이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 공들여 키운 흑돼지의 고기맛이 탁월하다.
돼지 냄새가 나지 않고, 구워도 육질이 뻣뻣해지지 않는다. 삼겹, 목살 180g 1인분에 1만원. 생갈비 220g 1만6,000원. 노형동 한라대 입구쪽에 있다. (064)744-9001,2
서귀포=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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