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44> 독거노인 김영례씨의 '특별한 가족'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44> 독거노인 김영례씨의 '특별한 가족'

입력
2009.03.15 23:59
0 0

서울역 부근에는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자랑하는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다. 대한민국 수도의 중심답다. 하지만 빌딩 뒤의 모습은 전연 딴판이다. 서울역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꼬불꼬불한 샛길을 따라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빌딩 숲에 묻혀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용산구 동자동이다. 옛 향수가 물씬 풍기는 이 곳에는 한두 평 남짓한 방 한 칸을 마련하고 혼자 지내는 노인들이 많다. 재개발 사업 추진이 더뎌 슬럼화하면서 집값이 워낙 싸졌기 때문이다.

숨을 헐떡이며 좁다란 샛길을 오르다 보니 오른 편으로 당장 쓰러질 듯한 4층 건물이 나타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비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 맨 끝 자락에 김영례(가명ㆍ72) 할머니의 보금자리가 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거무튀튀한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고, 청 테이프로 고정시킨 커튼은 여기저기가 헤진 모습이다. 살림 도구라야 작은 상 하나와 버너, 옷장과 냉장고가 전부다.

그래도 부지런한 할머니의 손길 덕택에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작은 방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큰 냉장고가 있어 다소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김 할머니는 "아는 사람이 5개월 할부로 끊어줘서 한달 전에 큰 맘먹고 샀어. 매달 내는 8만원이 버겁지만 이놈만 보면 안에 넣어 둔 김치를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라며 허허 웃는다. 김 할머니는 한국야쿠르트 판매원 강미숙(48)씨가 매일 돌봐드리는 독거노인이다.

할머니가 이곳에 둥지를 튼 지는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래도 여기는 형편이 좋은 곳이야. 예전에 살았던 후암동 너머는 햇빛도 잘 안 들고 수도조차 없었거든. 앞으로 형편이 더 나아져서 8평 임대아파트에 살게 될 지 누가 알아." 할머니는 열악한 환경을 걱정하는 강씨에게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김 할머니의 월 수입은 41만원이다. 구청에서 나오는 정부지원비 35만원과 기업 후원금 6만원이 전부다. 이 중 월세 22만원과 냉장고 할부금 8만원,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월 5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한 편이지만, 내가 일해서 버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어. 청소라도 해서 생활비를 보태고 싶지만, 약간의 소득이라도 있으면 정부지원비를 한 푼도 못 받거든. 예전에 학원에서 청소 일을 했는데, 누가 신고를 했는지 구청에서 지원을 딱 끊어버렸어. 이후로 다시는 일을 할 엄두를 못내."

조심스레 혼자 지내는 이유를 물었다. "경기도 오산이 내 고향이오. 옛날에야 물론 가족들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남편도 새 살림을 차리더니 얼마 안돼 세상을 떴어. 스무 살에 결혼해 여자아이를 낳았지만 시름시름 앓다 죽었고, 그 후 남편과 이혼을 했지."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자, 할머니는 더 이상 고향에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반도주 하듯 달랑 보자기 하나 들고 고향을 등졌다. "서울로 시집갔던 친구 하나 믿고 무작정 상경해 식당에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했지." 그렇게 근근히 버텼으나, 상황은 갈수록 나빠져갔다.

나이가 들면서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 빚 보증을 섰다가 1,500만원을 고스란히 떠 안았다. "빚쟁이들이 끝없이 찾아와 괴롭혔지. 서울 구석구석에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한 끝에 겨우 빚을 다 갚았어."

그새 고향은 더욱 아득해졌다. "내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형편인데 고향에 돌아간다고 누가 반겨주겠어. 고향이랍시고 내려가서 신세지고 살 수는 없잖아. 어쨌든 맘 편하게 여기서 지내는 게 낫지. 고향에 내려가면 자존심도 상하고…." 할머니는 체념하듯 말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가족이 생겼다. 동자동 쪽방촌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생긴 할머니의 가족은 바로 한국야쿠르트 판매원 강미숙씨다. 강씨는 매일 야쿠르트 한 봉지를 들고 할머니의 한 평 짜리 쪽방을 찾는 유일한 사람이다. 강씨는 "홀로 사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딸이 되어주고, 때로는 부인이 되기도 한다"며 웃었다.

강씨는 매일 40~70명 가량의 독거노인을 방문, 건강을 점검하고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할머니는 강씨를 딸처럼 살갑게 대한다. "이 동네 오기 전부터 우리 딸을 길에서 종종 만났는데, 그 때 건넨 야쿠르트가 어찌나 고맙던지….

이제 집까지 찾아와서 돌봐주니 더 반갑지. 1분이라도 매일 보는 게 큰 위안이 돼.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다 보니 아무도 모른 채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려웠거든." 할머니의 목소리가 사르르 떨렸다.

김 할머니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쥔 강씨는 "더 자주 찾아 뵙고 돌봐드려야 하는데 오히?죄송하다"며 "어머니 같은 분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드리고 싶은 것이지, 봉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더 쑥스럽다"고 했다.

■ 한국 야쿠르트 아줌마

"남들을 돕다 보면 제 삶에 더 큰 활력으로 돌아옵니다."

하루 평균 40~50명의 독거노인을 만나는 한국야쿠르트 아줌마 강미숙(48)씨의 말이다. 강씨와 같은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국 550개 영업장에 1만3,500여명이나 된다. 이들이 돌보는 독거노인 수는 하루 평균 2만여명.

한국야쿠르트가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나선 것은 1994년부터. 독거노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사회적 관심이 커질 무렵이다. 당시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직원들이 한국야쿠르트에 독거노인 방문운동을 제안했고,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시작됐다.

강씨는 "언젠가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집에 쓰러져 있어 황급히 구급차를 불러 목숨을 건진 적이 있다"며 "우리가 아니더라도 독거노인들의 건강을 매일 챙겨줄 수 있는 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야쿠르트는 '건강사회 건설'이라는 창업이념 아래 다양한 '나눔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여기에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힘을 보태고 있음은 물론이다. 동네 구석구석에까지 미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손길은 '사랑의 김장나누기 큰 잔치', '사랑의 떡국 나누기', '봄맞이 희망의 대청소' 등을 일궈냈다.

한국야쿠르트 임직원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1975년 조직된 사내 봉사단체 '사랑의 손길 펴기회'는 매월 임직원들의 급여 1%를 모아 봉사활동 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희망동전 모금운동'을 통해 모은 1,600여 만원을 기아대책본부에 기부하기도 했다.

김기홍 한국야쿠르트 홍보과장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회사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하는 분들"이라며 "건강사회 건설을 위해 아줌마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