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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교육, 死교육] <5> 등골 휘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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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교육, 死교육] <5> 등골 휘는 학부모들

입력
2009.03.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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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S직업소개소. 직원들이 문의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가운데, 40~50대 여성 4명이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있었다. "반나절이라도 가사도우미나 식당 일이 들어올까 해서 기다리는 중"이라는 이들은 모두 전업주부였다가 지난해 12월 이후 이 일을 시작한 신참들이었다.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애들 학원비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파구 거여동에서 온 김모(44ㆍ여)씨는 지난달부터 식구들 몰래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작년부터 남편이 하는 인테리어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그동안 저축해둔 돈으로 근근히 버텨왔는데, 올해 고3이 된 딸아이 학원비, 과외비 월 70만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어요." 이날도 3만원 받고 4시간 오전 일을 했는데, 일하다 손톱이 부러진 것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점심도 대충 때우고 또 오후 일거리를 잡으러 소개소에 들른 그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딸에게 차마 힘든 내색을 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성원 S소개소 실장은 "전업주부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문의 전화가 하루 50통 넘게 걸려 온다"면서 "이곳에는 먹고 살기 막막한 극빈층은 거의 없는 편이고 대부분은 자녀들 학원비를 벌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작년 말부터는 명품가방 들고 중형차 타고 오거나 대학원까지 나온 강남 주부들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하겠다'며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늘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선 주부들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들이 특별한 경력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식당 일이나 청소, 가사도우미 등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이마저도 경기가 좋지 않아 작년 하반기부터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드물게 자리가 생겨도 중국 동포들에게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고2, 중3 두 아들을 둔 박모(38ㆍ여ㆍ경기 부천시)씨.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남편이 한 달에 250만~300만원 정도 벌어오지만 학원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 당 학원 종합반 수강료 70만원에 교재비 10만원 등을 모두 합하면 월 170만원. 식당과 간병 일을 주로 해온 박씨는 요즘 벌이가 더 좋다는 골프장 캐디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박씨는 "주변에 나처럼 애들 학원비 때문에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면서 "식당 일 등이 육체적으로 힘든 데다 벌이도 신통치 않다 보니, 덜 힘들고 시간당 2만5,000원쯤 벌 수 있다는 노래방 도우미 일로 빠지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구요? 저도 큰 딸이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등록금 걱정 많이 했는데 고등학교 때 들어가던 학원비에 비하면 오히려 싼 게 아닌가 하는 싶어요." 경기 평촌에 사는 주부 박모(42ㆍ여)씨는 사교육비에 대해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작년 큰 딸이 고3일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옷가게를 하는 남편의 월 수입이 350만~400만원인데, 큰 딸의 영어ㆍ수학 과외비 100만원에다, 작은 딸(중2) 영어ㆍ수학ㆍ사회 학원비까지 합쳐 한 달에 200만원 가까운 사교육비가 들었기 때문. 견디다 못한 박씨는 남편의 옷가게 점원 인건비 100만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작년 초부터 가게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

부모들도 월 수입의 절반을 사교육에 쏟아부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미친 짓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부천의 주부 박씨는 "누군들 집에서 살림만 하고 싶지 않겠냐"며 "남들도 다 시키고 학원을 필수로 다녀야 하는 분위기라 이렇게 돈을 벌어서라도 학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평촌의 박씨도 "주변에서 학원 안 다녀 뒤처지는 애들 많이 봤다. 사교육비 아니면 굳이 내가 일을 나갈 필요도 없고 편안히 노후 준비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 초등~고교 사교육비 얼마나 드나… 올 연세대 신입생 朴모양 사례

요즘 고등학생이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 학원 수강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월 100만원 안팎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월 평균 가계소득은 336만9,000원. 고등학생 1명만 있어도 소득의 3분의1 가량이 사교육비로 나가는 셈이다. 이런 과도한 사교육비 때문에 '상아탑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사람 등골 빼는 인골탑(人骨塔)부터 쌓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자녀 1명을 대학에 보내기까지 사교육비는 얼마나 들까.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박모(20)양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 전까지 사교육비에 총 1억58만원이 들었다. 어머니 김모(49ㆍ고교 교사)씨는 "뼈括?꼭 필요하다고 느낀 과외와 학원 수강만 했을 뿐 고액 과외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양은 전체 사교육비 가운데 절반을 넘는 5,150만원을 고등학교 때 썼다.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1년간의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비용 1,500만원(생활비 제외)이 포함된 액수지만, 김씨는 "한국에 있었어도 사교육비는 비슷하게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에서 돌아온 뒤 1학년 2학기부터 3학년 말까지 든 수학 과외비가 1,360만원, 고교 시절 내내 다닌 논술학원 수강료는 1,190만원이었다. 어학연수 후 영어 사교육비는 들지 않았다.

중학교 3년간 든 사교육비는 3,576만원. 수학 성적이 부진해 1학년 2학기부터 시작한 과외에만 월 40만원씩 30개월동안 1,200만원을 썼다. 1, 2학년 때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주요과목을 가르치는 종합학원 수강료가 660만원, 특목고 입시 준비를 위해 다닌 논술 학원비는 840만원이었다. 영어 학원비는 2학년 초부터 24개월동안 720만원을 썼다. 초등학교 때부터 월 13만원 하는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문법 읽기 쓰기 말하기 등 분야별 심화학습이 어렵다고 판단, '학원 갈아타기'를 한 탓이다.

초등학교 때 사교육비도 1,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1학년부터 중학교 입학 전까지 영어 학원비 780만원, 6학년 초부터 다닌 학원 종합반 수강료 360만원, 집으로 배달하는 학습지 구독료 192만원 등 총 1,332만원이 사교육비로 지출됐다. 어머니 김씨는 "영어유치원도 보내지 못했는데 남들 다 다니는 영어학원만큼은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재수를 할 경우 비용 부담은 훨씬 커진다. 재수생 전문학원 종합반의 수강료는 월 60만원 안팎. 2월 초 개강, 대학별 입시가 시작되는 12월까지 10개월간 학원비만 600만원이다. 재수를 해서 올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들어간 정모(20)군은 "같이 공부한 친구들 가운데 3분의2 정도는 수능을 앞둔 8, 9월부터 학원 특강이나 과외를 받았는데, 최소 월 100만원은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양 만큼은 아니어도 초ㆍ중ㆍ고교 사교육비가 5,000만~6,000만원 이상 든다는 게 학부모들의 말이다. 올해 아들을 고려대에 보낸 김모(50)씨는 "학원 종합반의 경우 학기 중에는 40만원, 하루 종일 수업하는 방학 때는 80만원으로 매년 학원비만 600만원 정도 들고, 수학이나 영어 같은 주요과목 과외를 더할 경우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고교 3년간 최소 3,000만원이 든다는 것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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