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정체도 걱정이고 피곤하기도 해서 친정에 맡긴 아기만 찾아 휭 달려가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뭘까, 이 기분? 기저귀도 챙겼고 아기가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장난감칼도 있는데 뭔가 빠뜨린 느낌이다. 덜컹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에야 그것이 떠올랐다. 아버지. 아버지에게 간다는 인사말조차 하지 않고 와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늘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다. 대학 시절, 교지 편집실에 있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우리 학교 학생 중 하나가 '최불암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것 아니냐는 방송국의 전화였다. 왜 하필 최불암씨였을까.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우리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한몫했을 것이다. 유머 속의 최불암은 우직하다 못해 답답하다.
곳곳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아버지도 인간이었다. 'danger'라고 쓰인 병을 '단거'로 읽고 마셔버린다. 불이 나서 학생들이 전부 운동장으로 대피하지만 끝까지 교실을 지킨다. 교실 창문에서 얼굴을 내민 최불암이 소리를 지른다. "주번도 나가도 돼요?" 1990년대초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이 유머 속에서 그 당시 조금씩 흔들리던 아버지들의 위상이 드러난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간다'가 아니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간다'로 문장을 잘못 읽은 기분이다. 아버지라는 가방을 나는 자꾸 잃어버린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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