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큰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한나라당에선 '좌파정권 10년'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방향이 지난 10년과는 다름을 강조하는 동시에 비판여론을 정면돌파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집권여당이 매번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데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가장 비근한 예는 "지난 10년 진보정권 하에서 사법부 내에는 진보좌파 성향의 사람들이 없었는지 사법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라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발언이다. 신 대법관을 적극 옹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은연중에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을 문제삼은 판사들과 지난 정권의 정체성을 오버랩시킨 것이다. 당연히 "색깔론을 꺼내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비판이 나왔다.
사실 한나라당은 오래 전부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공개적으로 '좌파정권 10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전 정부에 대해 낙인찍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의 대립은 정체성 경쟁보다 이념적 편가르기로 받아들여지고, 특히 좌파는 친북반미와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사회 각 분야에서 단행된 수많은 물갈이 인사, 고교 근현대사 역사교과서 수정 등 사회적 논란이 컸던 현안들에 대해 정부의 좌파정권 청산 명분을 적극 지지했다. 스스로도 "지난 10년 간 좌파정권에서 이뤄진 수많은 좌파적 법안을 정비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법안전쟁을 선언했다.
여권이 궁지에 몰렸을 때도 매번 좌파정권 10년을 공격하며 돌파구를 만들어 갔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는 "진보정권 10년을 거쳤는데 이 정도의 저항을 예상치 못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아주 나이브한 정부"(홍 원내대표)라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 때도 "좌파정권에서 잘못된 역사관이 뿌리내려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는 토양이 만들어졌다"(전여옥 의원)고 했고, 항의집회 참가자들을 '반정부 좌파연대'로 규정한 뒤 엄정한 법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심지어 지난해 말 금융위기 우려가 확산되던 때에는 "오늘날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 건 10년에 걸친 좌파정권의 좌편향 정책 때문"(박희태 대표)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이에 대해 명지대 신율 교수는 "이전 정부를 좌파로 규정해 공격하는 게 지지층 결집과 수세국면 탈피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국민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근시안적인 전략"이라며 "결국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재집권에도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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