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로 출범 1년이 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여야의 추천을 받은 상임위원들이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방송 심의를 펼친다는 취지로 출발한 민간 합의체 방송 심의기구다. 그런데 이 방통심의위가 최근 방송 보도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방송 공정성 심의 가이드라인'(가칭) 제정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 보도와 관련해 MBC 프로그램을 중징계하는 등 계속된 '정치적 이슈' 심의로 비판을 받아온 이 기구가 만들겠다는 가이드라인이 자칫 "언론활동을 규제하는 보도지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광우병 관련 보도로 MBC 'PD수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격화되던 지난해 8월 언론학자 6명에게 '방송 공정성 심의를 위한 가이드라인'(안)의 연구를 의뢰했다. 최근 이들로부터 방통심의위가 제출받은 안은 총칙을 포함해 모두 6개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칙은 '방송은 사회적 쟁점에 관해 다양한 관점과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할 때 공익 실현이 되며, 가이드라인은 방송의 일상적 활동에서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주요 쟁점 별 지침을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되어있다.
가이드라인은 세부 지침에서는 논평ㆍ시사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공정성을 준수하도록 유의하고, 토론프로그램이나 사회적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다룰 땐 특히 편파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뉴스는 내용뿐 아니라 인터뷰 대상자와 인터뷰 길이, 카메라 앵글 및 그래픽 등에서도 불편부당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주말 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 전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지만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인터뷰에 대해서는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아직 학자들의 의견을 모은 정도에 불과하고 보고서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의견 제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지침을 실행할지 아닐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그 어떤 대답도 내놓을 게 없다"며 "이 문제가 불거지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 안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 방송법 개정을 반대하는 보도에 치중했다는 이유로 MBC가 시청자사과 등 재허가시 감점요인이 되는 중징계를 받은 직후여서 오히려 더 논란이 됐다.
학계에서는 일단 안을 만든 교수들의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에 따라 재단된 지침으로 단정짓지 않는 분위기다. 또한 가이드라인 안의 결론이 참여 교수들의 만장일치로 이뤄진 게 아니고, 아직 방통심의위의 의견 반영도 이뤄지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가이드라인 안 작성에 참여한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는 "당초 이런 잣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난색을 표하며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안을 만들기 위해 교수들이 수많은 논의를 해서 결론을 내놓게 됐다"며 "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데 중점을 둔 과정이고 미국 영국 일본 등 많은 언론선진국의 사례에서 대부분 참고한 것으로 절대 언론통제 수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침을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언론의 자체검열을 강화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다.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아직 가이드라인 안의 옳고 그름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미디어법이라는 민감한 이슈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 같은 지침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정부의 의도가 감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며 "공정성의 정도를 칼날처럼 재단하는 잣대를 정한다면 분명 문제"라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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