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우리경제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금년 초 1달러에 1,259원으로 출발한 원화 환율은 불과 두 달만에 1,550원대로 치솟았다. 특히 상승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일반 국민이나 기업들은 환율에 맞추어 경제활동을 조정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자녀를 해외에 유학 보낸 기러기 가족과 상품을 수입해야 하는 수입업체들은 속수무책으로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환율 방어선' 의미 적어
어제는 달러 당 1,510원대로 급락했지만 이런 환율은 우리경제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승낙이 떨어지기 만을 기다리던 1997년 12월 중순의 수준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평가했을 때, 지금의 환율은 최악의 외환위기 상황에서나 볼 수 있던 수준인 것이다. 외환위기 때는 외환보유고가 텅텅 비어 별다른 도리가 없었지만, 지난달 말 현재 우리 외환보유고는 세계 6위인 2,008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 외환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외환위기 수준 가까이 환율이 올랐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환보유고를 풀어서라도 환율을 무조건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외환 운용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우리가 번 돈은 얼마이고, 빌린 돈은 얼마인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우리 호주머니에 있는 돈 가운데 우리 돈은 얼마이고, 남의 돈은 얼마인지 가려보자는 얘기다.
외환보유고는 경상수지를 통해 들어온 부분과 자본수지를 통해 들어온 부분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우리 힘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자본수지 흑자는 해외투자를 유치하거나 해외차입을 통해 들여온 돈, 다시 말해 찾아가겠다거나 돌려달라면 막거나 거절할 수 없는 남의 돈이다. 우리경제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누계치로 1,513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따라서 외환보유고 가운데 1,500억 달러 가량이 우리 힘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벌어들인 '우리 돈'이며, 나머지는 '남의 돈'으로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맡긴 돈을 빼내가지 않도록 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외 금융기관이 모두 '제 코가 석자'인 마당에 아무리 최선을 다해 설득해도 끝내 자기 돈을 찾아가겠다고 우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2,000억 달러 방어선'은 '꺾어지는 숫자'라는 의미 말고는 특별히 중요한 경제적 의미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지켜야 할 외환보유고의 1차 방어선이 있다면 지금의 2,000억 달러보다는 그 동안 우리가 모아온 돈인 1,500억 달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며칠 전 "2,000억 달러 기준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적절한 조치다. 그 한마디로 외환시장에서 정부의 운신의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정부는 '2,000억 달러 방어선'을 지키는 데 이미 손발이 묶여버렸을 것이다.
적정 환율은 재도약 밑거름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대폭 줄이면서까지 환율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가파른 환율상승에 고통을 느껴온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생각하고 세계경제 회복 이후를 내다본다면 환율이 높아진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원화 환율이 '적당히 높은 수준'에서 안정을 찾을 경우, 언젠가는 찾아올 세계경제 회복기에 우리경제가 재도약하는 데 값진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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