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5시20분 서울 양천구 신정사거리의 인력시장. 일용직 노동자 100여명이 사람 구하러 온 봉고차가 나타날 때마다 얼른 주위를 에워쌌다. 이어 '찍힌' 사람들의 환한 웃음과 남은 이들의 깊은 한숨이 교차했다.
수행원 10여명을 이끌고 모처럼 새벽 현장방문에 나선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인사를 건네도 당장 일감잡기가 급한 노동자들은 본체만체 했다. 이후 8, 9대의 봉고차가 50명 가량을 태우고 사라지자 6시10분쯤 파장 기운이 돌았다.
남은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 장관을 알은체 하고 함께 인근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의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철근ㆍ콘크리트 기술자라는 이덕남(60)씨는 "1, 2년 전에는 한 달 평균 보름을 일했는데 요즘은 열흘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일당이 13만원인데, 인력업체를 통하면 수수료를 떼고 손에 쥐는 건 10만원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부천에서 온 최모(63)씨도 "일감이 없어 매일 허탕이다. 한 달에 4, 5일밖에 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보다 하루 일당이 1만~2만원 싼 중국인과 중국동포 근로자들 때문에 일감 구하기가 힘들다"며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노동자들 사이에 여기저기서 "맞다" "(불법체류) 단속이 필요하다"는 맞장구가 이어졌지만, 부처간 이견과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한 듯 이 장관은 즉답을 피했다.
한 달에 4, 5일밖에 일을 하지 못해 사실상 '실업'인데도 엄격한 규정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근로자는 "일용직은 180일을 일한 뒤에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데, 요즘같이 일자리가 없는 때는 죽으라는 말과 같다"면서 "기준을 150일 이하로 완화해달라"고 건의했다.
손에 잡히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이 장관은 원론적 대답만 내놓았다. 이 장관은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대에 미흡한 줄 안다"며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가 산업안전교육과 기능훈련을 받으면 하루 1만5,000원씩 교육수당을 지급하겠다"며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내놓았으나, 반응은 썰렁했다.
장관에 대한 예우인 듯 면전에서는 말하지 않았으나 자리가 파한 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한모(58)씨는 "여기 나온 사람 모두 이 바닥에서 20~30년간 일한 사람인데 무슨 교육이냐"고 반문했고, 김모(60)씨도 "1만5,000원 받으려고 누가 나가겠느냐. 그냥 여기서 버티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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