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판결과 관련해 법원을 떠난 박재영 판사가 다시 회자된다. 신영철 대법관이 여러 형태로 그의 판결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부터다. 박 판사가 판사 직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선 그동안 말은 많았지만 대부분 짐작으로 그쳐 왔다.
이제 신 대법관 판결 개입 의혹 사건으로 박 판사가 자율성 침해에 대한 항의로 판사 직을 그만두었다는 게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박재영 판사는 직업적 자율성을 지키는 결연함을 행했지만 좋은 평가만을 받지는 않았다. 일부 언론은 '법복을 벗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아예 시위대와 함께 하지 그러냐는 비아냥을 언론이 흘리기도 했다.
직업적 자율성을 금과옥조로 삼는 법조인에 언론이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실제 박 판사가 법복을 벗고 법원을 떠나자 언론의 험한 입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아졌었다. 하지만 험하게 입을 놀렸던 일부 언론들은 오히려 신 대법관을 감싸느라 분주하다.
법조인이나 언론인은 종사함에 있어 직업적 자율성을 사회로부터 보장받는다. 그들이 펼치는 직업 수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부로부터 간섭받고 지시받기보다는 자율성을 누리며 사회적 평가를 기다린다. 사회에 대해 책임을 다했는가 아닌가로 직업적 수행을 평가받는다.
그런 점에서 법조인이나 언론인은 다른 곳에서 다른 업무를 보지만 비슷한 책무를 갖는 닮은 꼴 종사자다. 상부로부터 자율성 침해를 받은 법조인에게 언론이 비수를 날린 것은 그래서 더더욱 아리송하다. 자율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해야 할 언론이 그런 오버액션을 한 것을 두고는 심했다는 말 말고는 하기가 어렵다.
박재영 판사의 법복을 둘러싼 언론의 시비가 있을 즈음 언론인들의 옷매무새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YTN 앵커들의 검은옷 사건이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며 언론자유 침해에 항의하는 뜻에서 앵커들이 검은옷을 입고 방송 출연을 했던 일이다.
이 일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청자 사과 방송이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린다. 공정성과 품위유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 그들의 결정 이유였다.
YTN이 벌인 '낙하산 사장'에 대한 반대는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사회적 정의 수호를 위한 언론 직업 행위다. 언론 자율에 가해지는 박해를 반대하며 검은옷을 입은 것이야말로 가장 언론적인 직업 행위일 수 있다. 자율성을 지키라는 사회적 정언 명령을 준수하려는 전문직 종사자의 결연한 의지였다.
가장 언론스러운 행위에 철퇴를 가하는 일이야말로 공정성을 잃은 처사고 심의기관의 품위를 내팽개친 일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법복을 벗어라'는 일부 언론의 지나침에 버금가는 언론인 옷 벗기기 추태처럼 보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사회 구성원의 인신을 공권력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언론자유를 자신들의 안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옷을 벗기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법복을 벗어라, 검은옷을 입지 말라며 전문직의 직업적 행위들을 압박하고 있다. 농림부장관의 옷매무새까지 챙겨주는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일까. 법관의 옷, 언론인의 옷, 관료의 옷까지 힘깨나 쓰는 곳에서 걱정해주는 그런 사회가 될까 걱정이다.
모든 자율성은 사치가 되고, 전문직 종사자의 판단조차 일사불란함을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그런 한국이 될까 두렵다. 힘깨나 쓰는 곳에 '난 무슨 옷을 입을까요'라고 물어야 할 날이 올까 두렵다.
원용진ㆍ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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