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간섭' 논란이 그의 사퇴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사법권 독립의 요체인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으므로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사법부에서 유례 없는 논란을 이렇게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행위가 법원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넘어 재판 간섭에 이르렀는지를 명확하게 밝혀야만 이번 논란을 진정한 사법권 독립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진상 규명이 무엇보다 긴요한 이유는 '재판간섭' 의혹이 아주 모호해서가 아니다. 그가 촛불집회 관련사건을 맡은 법관들에게 보낸 이메일은 단순히 감독권자로서 재판 지연을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선 내용이 많다. 그러나 사법부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그 정도를 압력으로 느낀다면 판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서 "재판 진행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명백한 간섭"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것과 괴리가 있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을 밝히려면 그의 행위를 사법권 독립 원칙과 법원 관행, 법관들의 인식 등에 비춰 엄밀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이런 당위성을 외면한 채 사퇴 논란에만 매달리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정치사회적 다툼으로 치달을 소지가 크다. 사태를 대법관 개인의 일탈 행위와 자질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법행정과 재판 간섭의 경계를 엄격하게 설정하는 어려운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대법원 인적 구성 등을 둘러싼 이념 논란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걱정스럽다. 보수언론이 지레 '좌파 판사들의 이념 공세'를 비난하는 것도 지나치지만, 재야 법조계와 사회세력 등이 개혁 명분을 앞세워 사법부를 흔들고 '성향 변화'를 압박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복잡한 주변상황에 비춰 사법부는 심각한 진통을 피하기 어렵다. 초유의 사태를 지혜롭게 딛고 일어서려면 스스로 진상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진솔한 반성과 개혁을 하는 것만이 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사법권 독립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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