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의 기자회견 이벤트를 통해 실리를 챙긴 것은 일본이었다. 이벤트의 주인공인 김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을 위로했고, "북한은 납치 피해자가 고향에 돌아가도록 해 줘야 한다"고도 말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게 받아들일 상황이었다. 우리 정부는 명분은 챙겼지만, 남북관계에 있어 부담을 떠안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국가적 이슈다. 일본정부는 1997년 만들어진 '납치피해자 가족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도 납치 문제를 걸어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에 참여하지 않을 정도다.
참여정부 때는 한일 협조가 원활하지 않았다. 일본의 다구치 에이코(田口八重子)씨 가족은 김현희씨 면담을 5년 전부터 요구해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북관계를 의식해 일본과 엮이는 것을 피해 온 참여정부의 자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이 반전됐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우리 정부와 납치자 문제를 챙겨야 하는 일본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이번 회견은 일본 정부가 주관했지만 한국 정부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가능한 지원을 계속해 나가겠다"(2월 11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는 입장 아래 국가정보원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물밑에서 협력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번 행사로 우리 측이 얻은 것은 무엇이냐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발 전진했다"는 식으로 선전할 거리를 챙겼다. 반면 우리 정부의 경우 '인도주의 사안에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남긴 것 외에 다른 현실적 실속을 챙기지는 못한 것 같다. 정부가 목을 매는 납북자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일본의 협조를 얻어낼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회견으로 인해 일본인 납치자 문제, KAL기 폭파사건까지 이슈가 되면서 북한이 반발할 거리만 늘었다. 가뜩이나 험악한 남북관계 상황에서 또 하나의 짐을 떠안게 된 셈이다. 때문에 정부가 일본에 말려들어 불필요한 부담만 안게 됐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부산=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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