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관한한 천재 소리를 듣던 분이었는데…"
11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현대병원 장례식장. 전날 저녁 자전거로 퇴근하던 중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난 전남대 수학과 백정선(51) 교수의 빈소를 지키던 유족과 대학 동료 교수들은 유능한 수학자를 잃었다는 슬픔과 상실감에 젖어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고집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네요." 빈소 곳곳에서는 22년간 오직 자전거만을 이용해 출퇴근하던 '고집불통' 백 교수를 향한 원망어린 목소리도 묻어났다.
백 교수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10일 오후 6시50분께. 이 날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퇴근하던 그는 학교 정문에서 불과 500여m도 못 가 전남대 치과병원 앞 도로에서 '쿵'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자전거도로가 없는 탓에 편도 3차선 도로의 마지막 차선을 운행하던 중 졸음운전으로 차선을 넘어온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들이 받힌 것이다. 사고 직후 의식을 잃은 백 교수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백 교수는 1987년 전남대 교수로 임용된 뒤 "촌사람에게 승용차는 맞지 않다"며 자동차운전면허증도 따지 않고 줄곧 자전거로만 출퇴근을 하는 '자출족'을 고수했다.
그는 "이제 그만 승용차를 타고 다니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꿋꿋이 버티던 고집만큼이나 수학자로서의 실력 또한 뛰어났다. 그는 학창시절 못 푸는 문제가 없을 정도여서 '수학천재' '백도사'로 불렸고,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뒤 수학 영재교육과 컴퓨터를 이용한 수학교육 등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동료 교수들은 전했다.
백 교수와 77학번 동기인 서울대 신동우 교수(수리학부)는 "그는 수학과 교수로서는 드물게 해외유학을 거부하고 국내에서만 학위를 받은 순수 국내파였다"며 "앞으로 더 훌륭한 연구 업적을 낼 수 있었던 학자였는데 소중한 인재를 잃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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