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가 침묵했다. 도쿄돔 천장을 뚫고 나갈 듯했던 일본의 기세는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한국이 9일(이하 한국시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 라운드 일본과의 조 1,2위 결정전에서 1-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이틀 전 콜드게임패의 치욕을 되갚고 A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초대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조 1위로 1라운드를 통과한 한국은 명실공히 아시아 최강임을 확인했다. 경기 후 미국 애리조나로 이동한 한국은 16일 낮 12시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B조 2위와 8강 첫 경기를 갖는다.
한국 마운드 '최후의 보루' 봉중근(29ㆍLG)이 2회 연속 '도쿄대첩'의 선봉에 섰다. 봉중근은 선발 5와3분의1이닝 동안 일본의 호화타선을 3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극일'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직구 스피드는 142~144㎞에 머물렀으나 예리한 변화구와 함께 낮게 깔리는 제구, 구석구석을 찌르는 코너워크로 일본 타선을 압도했다.
1회부터 8타자를 연속 범타로 처리한 봉중근은 3회 2사 후 조지마 겐지(시애틀)에게 첫 안타를 허용했으나 후속타자를 잘 처리했다. 하이라이트는 4회였다.
봉중근은 첫 타자 나카지마 히로유키(세이부)에게 중전안타를 맞은 데 이어 보크로 1사 3루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3~5번 타자 아오키 노리치카(야쿠르트)와 무라타 슈이치(요코하마) 이나바 아츠노리(니혼햄)를 내야땅볼과 내야플라이로 돌려세우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봉중근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와의 3차례 맞대결에서도 모두 땅볼로 처리하며 완승을 거뒀다. 봉중근은 1-0으로 앞선 6회 선두타자 이치로를 투수 앞 땅볼로 처리한 뒤 한계 투구수에 육박해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국은 '0'의 행진을 계속하던 4회 선두타자 이종욱(두산)의 볼넷과 2번 정근우(SK)의 중전안타로 만든 1사 1ㆍ2루에서 4번 김태균(한화)이 좌익선상으로 빠지는 천금 같은 결승타를 때려 균형을 깼다. 일본의 화려한 계투진과 맞서 싸운 한국은 정현욱(6회ㆍ삼성)-류현진(8회ㆍ한화)-임창용(8회ㆍ삼성)으로 이어지는 특급 계투조를 앞세워 일본의 추격을 따돌렸다.
조 1위 상금 30만달러를 받은 한국은 기본 출전수당(30만달러)과 2라운드 진출수당(40만달러)을 합쳐 100만달러의 상금을 확보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단이 4강에 오르면 10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할 예정이다.
도쿄=성환희 기자
■ 홍성흔의 WBC 읽기/ 콜드게임 패배가 보약… 태극전사 '똘똘'
한국 선수들에게는 지난 7일 일본과의 승자승 경기에서 콜드게임으로 졌던 게 오히려 보약이 됐던 것 같다. TV를 통해서도 선수들이 똘똘 뭉쳐 있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이번 경기에서는 선발투수 봉중근을 비롯해 정현욱 류현진 임창용으로 이어지는 계투진이 가장 빛났다. 그리고 그 투수들을 포수 박경완이 역시 베테랑답게 노련하게 리드해줬다. 또 김인식 감독은 마운드 운용에서 하라 다쓰노리 일본대표팀 감독을 완전히 제압했다.
일본이 자국 언론을 통해서 '이치로의 30년 발언', '노무라 감독의 한국 배터리 코치 발언' 등으로 한껏 분위기를 돋웠는데 조금 경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한국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자극제가 됐다.
조금 다듬어야 할 부분은 이번 경기에서도 드러났듯이 베이스 러닝이다. 경기를 하다 보면 베이스 러닝 실수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본선에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4번 타자 김태균의 뒤를 받치는 이대호는 하루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대호는 롯데의 팀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굉장히 좋은 모습이었는데 WBC 들어 한두 경기 못하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이대호와 추신수의 컨디션 회복이 중요하다.
본선에서는 야구 강국들이 즐비한데 오늘 같은 집중력이라면 한국이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픈 가운데에도 류현진이 투혼을 발휘해 중간계투로 등판했듯이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은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제1회 WBC 4강 멤버
■ 양팀 감독의 말/ 김인식 "미숙한 주루플레이 고쳐야"
▲김인식 한국 감독
1차전에서 무참하게 패했는데 오늘은 이겨 너무 기쁘다. 오늘 승리로 어린 선수들이 본선에 가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잘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경기는 초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났다.
그리고 때로는 투수가 95% 이상 경기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경기였다. 우리 선수들은 오늘 몸쪽에 대비하고 타격에 나섰다. 미숙한 주루 플레이 때문에 점수를 더 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하라 다쓰노리 일본 감독
14점을 뽑아낸 뒤에 한 점도 못 내는 것이 바로 야구다. 한국 투수들의 공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좀처럼 칠 수가 없었다. 오늘 패배를 단결력을 더욱 고취시키는 계기로 받아들인다.
그런 분위기를 안고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양 팀이 끝까지 살아 남아서 아시아 야구를 세계에 알리는 대표팀으로서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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