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촛불재판 개입'의혹 조사결과 발표를 다음주로 미루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조사내용과 조치 여하에 따라 사태가 조기 수습될 수도,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조사결과 발표와 함께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들을 놓고 예상되는 파장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대법원 해법 놓고 고민
조사단은 11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번 주내 발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늦어도 13일에는 발표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오후 들어 갑자기 "추가 조사가 필요해 이번 주 발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조사결과가 부실할 경우 예상되는 역풍을 감안하면, 대법원이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심정으로 미진한 부분을 거듭 점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재판'뿐 아니라 다른 시국사건에도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했을 수 있다. 지난 달 '촛불재판 몰아주기 배당'에 대한 의혹이 처음으로 불거졌을 때 대법원은 해당 판사들을 상대로 하루 만에 전화로 조사를 끝내고 "문제없다"고 발표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법원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무엇보다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다. 본인이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해법이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그 전에 신 대법관의 일련의 행위를 재판개입으로 볼 것인지, 사법행정의 일환으로 볼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만일 부당한 재판개입이라고 본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어느 수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물을지가 쉽지 않은 문제다.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경우 해임이나 파면은 할 수는 없다. 법관은 탄핵 이외의 방법으로 면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신 대법관이 징계위에 회부될 경우 스스로 사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는 "대법관이 징계위에 회부된 사례가 없는 데다, 징계위에 회부되는 것만으로 대법관으로서 권위에 큰 상처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자진 사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직 추스를 방안도 검토
대법원은 조사결과 발표와 함께 비슷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13일 전국 법원 수석부장판사 회의에서 중요 사건 등을 법원장이 임의 배당할 수 있도록 한 예규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촛불재판 몰아주기 배당'의 근거가 된 이 단서조항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 인사제도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히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많은 판사들이 '법원의 관료화'가 이번 사건의 근본원인이라고 꼽고 있다. 설민수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법관 역시 관료제 조직의 일부로 승진을 거치는 인사 과정 속에서 재판부의 독립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장이 판사들을 평가하고 승진시키는 제도 속에서, 일선 판사들의 독립된 판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의 인사체계를 승진이 아닌 순환보직과 같은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던 부분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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