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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조희팔 놓치고 제보자에 덤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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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조희팔 놓치고 제보자에 덤터기

입력
2009.03.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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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51)씨의 중국 밀항을 눈 앞에서 놓친 뒤 오히려 밀항 제보자에게 뒤집어씌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찰은 조씨가 한 달여에 걸쳐 안면도에서 배를 타고 세 차례나 중국 밀항을 시도하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놓쳤다.

대전지검 서산지청과 태안해양경찰서에 따르면, 민간 양식업자인 박창희(42)씨는 지난해 10월 말 조씨측으로부터 밀항 제의를 받은 뒤 12월 9일 조씨 등 4명과 함께 충남 안면도 마검포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 서해 공해상에서 조씨를 중국측 선박에 넘긴 혐의(범인도피 및 밀항단속법 위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당시 태안해경 소속 경찰관들은 마검포항에 대기하다 박씨가 탄 배가 조씨를 중국에 넘기고 돌아온 12월 10일 박씨 등 4명을 검거했다.

하지만 본보가 입수한 담당 경찰과 제보자 박씨 등의 전화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박씨는 조씨측의 밀항 제의 사실과 조씨의 차량번호, 숙소를 비롯해 진행 상황을 해경에 수시로 알리고 해경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던 제보자이자 경찰의 망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모 당시 태안해경 감찰계장은 12월 말부터 올 2월 사이 박씨 및 박씨 친구 최모(36)씨와 수시로 주고 받은 전화 통화에서 "(박씨가) 제보자"이며 박씨가 밀항 진행상황을 알려와 공조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있는 그대로 (검찰에) 얘기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안해경은 공조 사실은 감춘 채 "박씨가 조씨를 마약거래범으로 오인하게 했다"는 내용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해경이 조씨를 놓친 것은 박씨의 구체적인 제보를 받고도 밀항 시도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마약거래범으로 단정했기 때문.

박씨는 "지난해 10월말 '4억원을 부도 내고 기소중지중인 친구 삼촌을 밀항시켜달라'는 제의를 조씨 측근한테 받았는데, 부도냈다는 사람이 돈을 1,000만~2000만원씩 물 쓰듯 해 해경에 알렸다"며 "조씨가 밀항자인지, 마약거래범인지 몰라 조씨가 타고 온 차량 번호, 이들의 숙소 등을 경찰에 수시로 알려주며 신원확인을 수십 번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경이 박씨의 요청을 무시하고 조씨를 공해상에서 중국 측과 거래해 마약을 받아오는 마약사범으로 단정했다는 것이 박씨 주장이다. 녹취록에서 박씨는 "내가 수십 차례 조희팔 사진 찍고(찍어라 하고), 차 넘버까지 찍어 형님 이메일로 보내주고…(그랬는데 왜 몰랐느냐)"라고 한 계장에게 따졌다.

이에 한 계장은 "순 서장님(순길태 당시 태안해경서장)이 경찰청 감식과에다 전화를 하더라고. 우리가 사진을 촬영해서 보내줄 테니 신상을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경찰청 자체적으로 그건 안 된다는 거야"라며 조씨 신원을 몰랐던 사실을 변명했다.

그러나 처음엔 조씨를 마약거래사범으로 오판했다고 하더라도, 한 달 넘게 조씨의 동태를 뒤쫓으면서 신원파악조차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씨는 2004년부터 다단계 방식의 의료기구 임대사업을 해오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전국 각지에서 5만여명의 투자자를 모아 4조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지난해 10월부터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태안 인근의 서산경찰서도 이 지역 피해자들의 고소가 접수되자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서 11월부터는 조씨 일당에 대한 공개 수배전단까지 만들어 배포한 상태였다.

조씨를 마약거래범으로 단정한 경찰은 조씨가 공해상에서 마약을 받아 돌아오면 잡기 위해 중국측과 접선할 공해상의 위치까지 지시해줬다고 박씨는 밝혔다.

녹취록에서도 한 계장은 당시 밀항선에 경찰관 한 명이 탈 것을 박씨가 제안해 이를 상의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 같은 경찰과의 공조 하에 박씨는 조씨를 태우고 지난해 11월 9일과 30일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지만 높은 풍랑으로 실패하고, 결국 12월 9일 세 번째 만에 밀항에 성공했다.

박씨는 "진짜 밀항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자, 경찰은 인터폴과 공조가 되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뒤늦게 밀항자가 조씨라는 것이 알려지자 나를 죄인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서산지청 관계자는 "경찰 기록에는 박씨와 경찰이 공조했다는 부분이 전혀 없다"며 "박씨가 미리 제보해 해경과 공조한 것이 맞다면 위법성 조각사유로 처벌을 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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