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회의 때 나왔던 아이디어 적용으로 내구성과 신뢰성은 향상됐는데, 에너지 효율성은 그대로인 것 같아. 이 부분을 향상시킬 묘안이 필요한데 말이야. 이중관 열교환기를 장착하면 저온 난방 효율이 더 개선되지 않을까? 압축기 위치를 좀 더 올려보고 순환펌프를 반대쪽으로 놓아보면 어떨까 싶은데…."
경기 수원사업장에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단지 내 3층 시스템에어컨 개발실. 본격적인 제품 양산을 앞두고 아이디어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3차원 입체 가상 시뮬레이션 화면을 보며 열성적으로 제안하는 김록희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팀 동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곳은 삼성전자가 올해 야심차게 탄생시킨 '지열원(地熱源) 히트 펌프'(사진)의 인큐베이터다. 지열원 히트 펌프는 시스템에어컨에서 실외기의 열원으로 땅 속에 흐르는 열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최첨단 장치. 기존 시스템에어컨의 실외기에선 공기나 물 등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왔다.
지열원 히트 펌프는 주변 환경 열원(공기, 수열, 지열, 폐열원)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지열 자원을 활용한 친환경ㆍ고효율 성능을 갖춘 신재생에너지 기기로 꼽힌다.
열펌프와 지중 열교환기를 이용한 이 장치는 여름철 냉방 때에는 건물 내의 열을 땅 속으로 방출하고 겨울철 난방 및 급탕 때는 땅 속의 열을 실내 및 온수에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으로부터 현존하는 냉ㆍ난방 기술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비용 효과가 높은 시스템으로 선정됐다.
지열원 히트 펌프가 주목 받는 이유는 우선 무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비(非)고갈성 에너지라는 점이다. 연간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땅 속의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면서도 이산화탄소와 같은 오염 물질 배출 없이 친환경적으로 열원 공급이 가능하다.
또한 팬(Fan)이 들어간 실외기 대신 팬을 생략한 지열원 히트 펌프를 사용함으로써 소음방지에도 효과적인데다, 시스템에어컨 설치 때 건물의 외형 손상이 줄어들어 깔끔한 외관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다.
지열원 히트 펌프의 효과는 이미 산업 현장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남 진주에서 시설원예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지열원 히트 펌프로 구성된 시스템에어컨을 설치하고 200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현장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기존 유류(경유) 운영비 대비 89%에 달하는 비용 절감 효과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1997년 지열원 히트 펌프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정부가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정책 실현을 위해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 입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중장기적인 신성장 로드맵에 친환경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신재생에너지 발굴을 우선 과제로 정했거든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시스템에어컨 개발그룹 김석우 책임연구원은 지열원 히트 펌프의 탄생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수 년간 공을 들여 올해 1월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인증을 획득한 지열원 히트 펌프(냉방 기준 529㎡ 가량의 면적 커버가 가능한 20마력 용량)는 다음 달 첫 선을 보인다. 내년 6월경에는 10, 30, 40마력 용량의 지열원 히트 펌프가 적용된 시스템에어컨도 출시될 예정이다.
보다 효율적인 신재생에너지 발굴을 위한 삼성전자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열원 히트 펌프의 단점으로 지적돼온 초기 설치 때의 고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스템에어컨 개발팀 연구인력은 실제 사용환경과 동일한 조건을 갖춘 주택 및 성능시험실 등을 오가며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유럽 등 선진 시장으로 시스템에어컨의 수출 선을 다변화할 계획이다.
시스템에어컨 개발그룹 권영석 차장은 "자원열을 이용한 냉난방 부문을 기반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보일러 시장을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며 "이런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은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도철 삼성전자 생활가전 개발팀장
"녹색성장의 열쇠는 신재생에너지 발굴에 달려 있습니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최도철 개발팀장 (전무)은 최근 세계 각국이 차세대 시장으로 지목하며 앞 다퉈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키워드로 '신재생에너지'를 꼽았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전제품에 대한 에너지ㆍ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 국가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신재생〕恪?발굴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신재생에너지를 집중 육성할 경우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현재 국내 산업계가 처한 위기 탈출의 돌파구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관련된 문제점도 지적했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관련된 지원이나 제도 개선이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등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잘 반영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합니다."
기업은 효율이 뛰어난 신재생에너지 기기를 개발하고, 한편에선 개발된 기기의 보급 활성화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이어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함께 수출 경쟁력 제고 등 녹색성장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널리 알려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정부의 '그린 가전' 정책 방향은
에너지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저전력ㆍ친환경 제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2020년 세계 인류 그린 정보가전 강국 구현'이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가전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에너지절감 및 친환경'(E&E) 분야의 혁신 기술을 앞세워 디지털 정보가전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글로벌 선도기술 발굴 ▲안정적 성장기반 구축 ▲선도적 시장수요 창출의 3가지 핵심 전략을 마련했다.
중장기 로드맵 측면에서 내세운 '글로벌 선도기술 발굴'의 기본 방향에는 초절전 기술 및 부품 적용으로 대기전력을 최소화한 에너지 저감형 가전제품 개발이 포함됐다.
유해물질을 줄이고 바이오 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를 개발해 제품 재활용 가능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병행된다. 폐가전제품 재활용(해체, 선별, 희귀금속 추출 등)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재생 제품의 품질 향상과 자원 효율성의 극대화도 도모할 계획이다.
아울러 고효율 기기 채택과 생산시스템 적용으로 2020년까지 생산공정의 에너지 효율을 최대 30%(2007년 대비)로 향상시킨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의 환경경영체제 구축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도 확대, 추진될 예정이다.
친환경ㆍ고효율 가전제품의 생산 및 소비를 통해 '그린 정보가전'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계획도 추진된다. 전자전 등을 열어 친환경ㆍ고효율 제품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동시에 소비 촉진을 위한 공익광고도 활발히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허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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