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바에즈가 목을 떨며 낮고 구성진 가락으로 부른 <운이 없었을 뿐(there but for fortune)> 이란 노래가 있다. 감옥에 갇힌 죄수, 골목길에 줄지은 노숙자, 술집 앞에 쓰러진 주정뱅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잇따라 등장한다. 이 모든 불행은 '운이 없었을 뿐'이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끝나는 노래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딥 퍼플의 <용병(soldier of fortune)> 이란 노래는 한결 개인적 서정을 담았지만, 서글프긴 마찬가지다. 운 나쁜 것과 죽어라 돈을 따라 다니는 게 무어 그리 다르랴. 용병(soldier> 운이>
■영어의 '포춘'은 라틴어 '포르투나(Fortuna)'에서 나왔다. 운명을 주재하는 로마 신화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튀케(Tyche)로 나온다. 이 '포르투나'에 대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은 이렇게 적었다. '운명의 여신은 강과 같다. 화가 나면 들판에 넘치고, 수목과 집을 파괴하고, 땅을 옮긴다. 그러나 미리 둑을 단단히 해서 방비해 두면 강물이 넘쳐도 운하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운명의 여신은 유순한 사람보다 난폭한 사람에게 더 고분고분하다. 또 젊은이를 사랑한다. 젊은이는 덜 신중하고, 더 거칠고, 더 과감하다.' 군주론>
■무조건 운명과 맞서는 것을 마키아벨리가 능사로 여겼던 건 아니다. 강물의 흐름에 맞춰 둑을 쌓을 줄 아는 예지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흐름을 거스를 수도 있는 강한 의지와 용기가 중요함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동양의 옛 천문도에 28수의 하나로 등장하는 묘성(昴星)은 운명보다 더욱 강력한 '숙명'을 주재하는 별로 여겨졌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다 보니 순응의 지혜에 무게를 실은 결과다. 아득한 옛날 하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듯,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시대는 갔다. 경제 먹구름도 스스로의 의지로 흩뜨려야 할 운명이다.
■그래서 세계 정상의 경제잡지인 '포춘' 한국어판 창간 소식이 반갑다. 부(富)를 뜻하는 '포춘'이란 간판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에 태어났다. 큼직한 판형에 두터운 미색 표지로 공황의 어둠을 상징적으로 털고자 했고, 발매 가격도 당시 뉴욕 타임스 일요판의 20배인 1달러였다. 고급스럽기만 한 게 아니었다. 존 K. 갈브레이스 등 쟁쟁한 필진이 '사회적 양심'이 가득한 글로 성가를 높였고, 지금은 세계경제 흐름과 가장 가까운 잡지가 됐다. 그 한국어판이 '포춘'을 직접 주진 않더라도, 경제 재건을 향한 지혜와 용기를 전하길 기대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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