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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산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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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산사나이

입력
2009.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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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폭 젖은 어머니는 피곤해보였다. 주말마다 어머니가 집 근처의 산을 찾은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배낭을 쿵 내려놓자마자 걱정이 늘어졌다. 수 년 사이에 등산로들이 수없이 늘어나서 무성하던 나무들이 뭉텅뭉텅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럼 거기도?" 몇 년 전 인적이 뜸한 수풀 속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볼 일을 본 적이 있었다. 빠른 길로 다니려면 뭐하러 등산은 나왔냐고 어머니는 천장에 대고 따졌다. 산에 갑자기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다시 등산붐이라도 일었냐고 묻기도 했다.

지난 주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며 거래처 동료가 사무실에 불쑥 나타났다. 배낭도 폴도 없는 가벼운 등산복, 등산화 차림이었다. 한참 사무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그가 산에 가 있었던 것은 프리랜서이기도 했지만 요즘 어수선한 회사 사정 때문이었다. 맞벌이를 하려 세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도 지방의 처갓집에 맡겼다.

얼마 전 보고 돌아왔는데 그새 사투리를 배워 "보고 싶어 우짜노"라고 말해 부부를 웃겼단다. 웃다가 그만 아내는 아기를 안고 울고 말았다. 산 정상에 앉아 두 주먹에 힘 빼고 내려다보는 서울은 그래도 좀 만만해보인다고 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도 뒤에도 사방에 자신처럼 넋 놓고 앉아 있는 산사나이들 천지였다. 그날 저녁 그와 마시는 소주 한잔이 썼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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