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던 신영철 대법관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9일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던 신 대법관이 돌연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조사 중단을 요청하며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퇴근 직후 오석준 대법원 공보관을 통해 "내일부터 다시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신 대법관의 행보를 '사퇴를 염두에 둔 장고'로 보고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하루
지난 주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던 신 대법관은 마치 결백이라도 증명해 보이려는 듯 이날 오전 10시부터 김용담 법원행정처장 등 6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의 조사에 응했다.
상황이 돌변한 것은 오후 2시30분. 오 공보관이 브리핑을 자청해 "신 대법관이 조사중단을 요청하며 사무실로 돌아갔다"고 밝힌 것. 조사를 받은 지 3시간 30분 만이었다. 즉각 법원 주변에서는 신 대법관이 조사단의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 돌았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사무실로 돌아간 뒤 일부 취재진에게 "참고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중단을 요청한 것일 뿐"이라고 밝혀 상황 판단에 혼선을 가져왔다. 특히 신 대법관은 취재진을 피해 근무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퇴근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대법원도 신 대법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 공보관은 신 대법관의 조사중단 요청 사실을 전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내일 조사를 재개하겠지만 (조사 재개여부는) 신 대법관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오 공보관은 "신 대법관이 내일 조사를 받겠다고 알려왔다"고 전해야 했다.
신 대법관은 퇴근 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몇몇 지인들과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도 오 공보관을 통해"할 이야기 없다"고만 전했다. 불편한 심경 속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었다.
진상조사와 내부여론에 항복?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까지 고려하게 된 것은 대법원 진상조사로 그의 재판 개입 정황이 굳어졌고, 법원 내부 분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해 법관 6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지난 주말 이틀간 신 대법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전ㆍ현직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 20명을 모두 조사했다.
조사단은 신 대법관이 촛불사건 몰아주기 배당, 촛불사건 처리를 독촉하는 이메일, 그 외 전화통화 등을 통해 재판 개입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단은 판사 20명에 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신 대법관을 추궁했고, 신 대법관은 결국 3시간 반 가량 조사를 받은 뒤 조사 중단을 요청했다.
신 대법관은 특히 소장 판사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연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8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신영철 대법관의 용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이날 정영진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명백한 재판간섭 행위이며 이에 대한 판사들의 토론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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