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소액주주들이 뿔났다. 매년 두둑한 배당금을 나눠주던 은행들이 잇따라 '무배당' 또는 '배당 대폭축소'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 정부에선 금융위기에 은행들이 배당잔치를 벌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지만 주주들은 주가가 폭락한 마당에 배당금마저 막는 것은 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 처사라며 반발, 논란이 일고 있다.
쥐꼬리 배당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18개 은행이 주주들에게 나눠줄 배당총액은 1,570억원 수준. 작년 배당총액의 5%에도 못 미친다. 물론 작년 은행권 순이익이 7조9,000억원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거의 반토박(47.4%) 났다는 점을 고려해도, 배당액은 너무 적은 편이다. 배당총액을 전체 순이익으로 나눈 배당성향은 작년 22.4%를 기록한 반면, 올해는 그의 11분의1 수준인 2.0%로 급락했다.
은행별로는 하나, SC제일, 국민, 씨티, 광주, 제주, 경남, 농협, 수협 등이 무배당을 결정했다. 배당을 하는 나머지 6개 은행도 대부분 배당금을 대폭 줄였다. 신한(4,065억→100억원) 우리(2,003억→25억원) 외환(4,514억→806억원) 부산(836억→300억원) 대구(793억→300억원) 등은 배당금을 삭감했으며, 전북(23억→40억원)만 유일하게 배당을 늘렸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가 대주주인 산업, 기업, 수출입은행 등도 배당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은행 지주사들도 배당을 할 여력이 없어졌다. 국민지주는 배당을 하지 않을 방침이다. 신한ㆍ우리ㆍ하나지주도 배당금을 대폭 삭감해 은행 지주회사의 전체 배당금은 2,500억원을 넘지 않을 전망이다.
배당 안하나 못하나
무배당 혹은 배당축소의 일차적 원인은 감독당국의 지도다. 금융당국은 이미 은행권에 대해 배당자제를 권고(사실상의 명령)한 상태. 정부 관계자는 "은행 건전성 강화를 위해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출자하는 마당에 배당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경제상황이 나쁘지만 지난해 적자를 낸 것도 아닌 만큼 굳이 하려고 맘만 먹으면 배당을 못할 것도 없다"며 "하지만 당국의지에 반하면서까지 배당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관계자도 "내부적으론 상징적으로나마 소액이라도 배당을 하는 것이 주주들에 대한 예의라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다른 은행은 다 (배당을) 안 하는데 우리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반발하는 주주들
시장내에서도 배당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LG경제연구원 황석규 선임연구원 역시 "정부가 은행에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올해 배당은 큰 폭 축소될 거라는 게 시장 컨센서스(동의)"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주들은 격앙되어 있다. 한 네티즌(아이디 우주인짱)은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서 "배당금이 없다면 주식투자의 목적도 없어진다"며 은행의 무배당방침을 강력 비판했다. 주총에서 외국인 주주들도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사실 원론적으로 배당금은 전년 수익에 기반해 산정되는 것인 만큼, 향후 수익이 줄어들 것 같다고 지금처럼 어려울 때마다 배당 제재부터 하고 보는 관례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더구나 은행 직원들의 몫(임금)은 손대지 않으면서, 정착 은행의 주인인 주주의 몫(배당)만 빼앗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나 다름없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배당금 축소가 불가피하다면 주주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성실하게 설명해주고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정부와 은행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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