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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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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입력
2009.03.1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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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진

식탁 위에 싹 자란 감자 하나. 옆에는 오래전 흘린 알 수 없는 국물 눈물처럼 말라 있다 멍든 무릎 같은 감자는 가장 얽은 눈에서부터 싹이 자란다 싹은 보라색 뿔이 되어 빈방에 상처를 낸다

어느 날 내 머릿속 얽은 눈이 저렇게 싹을 틔운다면?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보자기는 가위를 가위는 바위를 바위는 보자기를 이기지 못하지 숨바꼭질 술래를 정하면서 아이들은 삶의 부조리를 배운다 무궁화꽃이 아무리 피어도 술래는 움직이지 못한다 얼마나 오래된 것들을 저장해야 저렇게 동그래질까? 추억은 때로 독이 되어서 요리할 때는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 싹이 틀 때 감자는 얼마나 아플까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이 시는 둥글다. 제목을 읽고 나서 시의 앞머리를 읽고 마지막을 읽고 난 뒤 다시 시 앞머리를 읽으면 둥그렇게 맞물리는 시. 이 둥근 시의 중심에는 둥근 감자가 있다. 싹이 나고 잎이 나는 감자. 그런데 감자싹은 독이다.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자는 요리를 할 때 그 추억을 잘라낸다. 독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고무줄 놀이나 사방차기나 실뜨기 놀이를 할 때 부르던 노래들이 갑자기 생의 지금으로 불려 나와 노래를 시로 만드는 순간,

노래들이 얼마나 뼛속 깊이 우리들의 추억을 저장해 놓는지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추억은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 속에 싹과 잎이 나서 끝내는 잘라져야 하는 것. 추억을 저리도 오래 저장한 한 인간은 감자처럼 얼마나 아플까.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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