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17> 대목장 최기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17> 대목장 최기영

입력
2009.03.11 23:58
0 0

"어른들 시킨 대로만 했으면 되는데…."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큰 목수는 홀라당 타버린 숭례문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가 찬다.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최기영(62)씨는 대목장(大木匠), 즉 큰 목수다.

요즘 TV 광고에서도 얼굴이 보이지만, 그가 세상 앞에 성큼 나온 것은 불탄 숭례문 때문이다. 직계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라 그의 소회는 남다르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장이 그의 공식 직함이다. 3년째 학생들에게 매주 실기 강의 1시간, 건축 목구조 강의를 4시간 한다. 경기 남양주군 진접읍에 있는 그의 전수관에서 말을 청해 들었다.

- '어른들 시키는 대로'라니.

"중심의 헛집, 적심으로 불이 들어갔던 만큼 소방 호스를 (바깥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으로 집어넣었어야 했다. 나는 소방학교, 언론사 등에서 문화재 보존에 관해 특별강의를 많이 해서 잘 안다. 효율적으로 불 끄는 방법에 대해서도 강의했는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 사건 당일의 행적이 궁금하다.

"불 난 사실 알고 한걸음으로 달려가니 '대통령이라도 못 들어간다'고 막더라. 승인 문제 등으로 관료들이 몸 사린 결과다. 사생결단하고 불을 막았어야 했다. 용마루 뜯고 그 속으로 물 쏟아부었다면 그렇게까지는 유실 안 됐다.

19대 조부 최유경 할아버지가 한성판윤이란 관직을 하사받아 태조 5년 때 건립한 건물이어서, 나의 참담한 심경은 더했다. 현장 접근에 실패한 뒤, 나는 언론의 등쌀이 두려워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 앞으로 어떻게 될까.

"숭례문은 유구(遺構)가 보존돼 있는 만큼 원형대로, 99% 가깝게 복원 가능하다. 1960년대 초 해체ㆍ복원 과정도 지켜본 나로서는 더욱 자신있다. 필요한 나무도 구할 수 있다. 안면도에 서식하는 황장목(黃長木) 양송(陽松ㆍ양달에서 자라 단단하고 송진도 많은 소나무)이 그것이다. 고생 많이 한 나무라 강하다. 다시 세운다면 600년 이상은 족히 간다."

- 바람직한 복원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으로서 말한다. 남대문 복원 사업은 5,000 장인들 누구나 참여를 염원하는 대사업이다. 특정인 얼굴만 비출 일은 아니다. 수작업, 전통기법 고수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원로 장인을 비롯, 희망자라면 다 참여토록 해야 할 것이다. 특정인의 영리는 물론, 얼굴 비추는 데 이용돼서는 절대 안 된다. 이 기회에 문화재 관계자들도 양심에 따라 자퇴 등 거취를 확실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 장인들이 집 지어 관료한테 관리시킨 건데 관리 잘못했으니 관료들도 죄가 있다."

- 당신이 복원 사업의 지휘자로 지정된다면.

"대목장은 18개 직종(편수)의 우두머리, 총 관리자다. 예로부터 대목장은 중인으로서, 종1품 당상관까지 갈 수 있었던 자리다. 남대문 복원은 석공, 단청, 미장, 목공 등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못 할 일이다. 도편수는 소목(가구), 생활건축의 설계까지도 일일이 지시ㆍ관리하는 것은 물론, 자재의 중량과 움직임 등 역학구조까지 모두 계산한다.

600년 전 선조들이 소중히 남긴 유산에 불 냈으니, 죄스러운 마음에서라도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남대문 복원 사업은 지금 대목장 자격 가진 3인(전흥수ㆍ신응수ㆍ최기영)이 할지 아니면 한 사람이 할지 모르나, 올 연말 안으로는 결정 날 것이다. 모습은 물론 기법까지, 99% 원형에 가까워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자재 선별과 건조가 가장 중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설계도와 사진 등 관련 자료가 비교적 풍성하다는 점이다."

- 소요 예산은.

"성곽도 있지만 건축 복원이 가장 크다. 모두 200~300억원은 책정돼야 할 이 사업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전 과정을 영상 기록으로 확실히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여의 백제 건축 재현 공사 때, 그 같은 원칙을 처음 세웠다."

- 복원의 기초 작업은 어떤 순으로 이뤄지나.

"먼저 문화재청에서 유구를 조사하고 자재를 보관한 뒤 사용 가, 불가를 판정한다. 특히 성곽에 물이 들어갔으니 변형 여부에 대해 철저하게 진단해야 한다. 이어 설계와 공사의 금액을 산정한 뒤, 준비해둔 목재를 규격과 수량에 맞게 켜고 다듬어야 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보다 대목장을 누구로 할 것이냐의 문제다."

- 요즘 CF에도 모습을 비치는데.

"'이 녀석아, 이음새 하나가 1,000년을 가는겨'라는 말은 내가 촬영 현장에서 넣자고 한 말이다. 당시 성우가 겨우 40대라 목소리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광고장이'의 말에 내가 나선 것이다. 대학과 기업체 특강도 간간이 한다. 삼성그룹, 차문화협회, 고려대, 명지대 등 올해만 5차례 했다. 전통 건敾?흐름, 역사적 기능, 왜곡상, 시대적 흐름에 다른 멋의 변천 등에 대해 강의했다."

- 강의는 주로 어떤 내용인가.

"제도ㆍ설계ㆍ그림ㆍ조각 등 사원 건축에 필요한 모든 지식부터 익힌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전통 건축이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강조한다. 철저히 자연 소재라는 사실뿐 아니라, 항상 생활공간을 염두에 뒀다는 사실 때문이다. 황룡사지 9층 목탑도 그 안에 사람이 살 수 있게 했다. 중국ㆍ일본 것은 건축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 조선시대 이외의 건축도 관여하나.

"부여의 백제 재현 단지는 현재 80% 완성했다. 송나라 영조 시대의 건축 기법인 하왕식 기법에 대한 고증 문제를 한 신문이 문제 삼아 '이음매가 맞지 않다'며 사진까지 싣는 바람에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결국 나중에 내게 사과하고 해명 기사까지 게재했지만. 신라권으로는 경주 왕릉 앞 다리인 월정교 복원이 6개월째다.

황룡사지 9층 목탑은 유구, 관련 기록, 벽화 등에 따라 초석 고증 작업 중인데, 해 온 것 중 가장 힘든 복원 작업이다. 백제 건축 복원을 한 경험 덕에 집의 척(尺)수, 건물 구조와 배치 등이 추측 가능하다."

- 언제 가장 힘들었나.

"17살 때 엄격하기 짝이 없던 분위기에서 목수 일 배울 때, 6ㆍ25로 굶주렸을 때는 무밥이나 돼지비계일지라도 배부르게만 먹고 싶었다. 밥만 먹여주면 일했다. 남 잘 때 안 자고 일했다. 우리 장인들은 없이 살았고, 무지하다. 잘 배우고 최고로 부귀를 누리는 엘리트들보다 처진다. 그들보다 100배는 열심히 해야 그 차이가 메워진다.

올바른 장인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전통 장인들은 바로 그 과정을 거쳤다. 남이 잘 때 일하는 게 장인이다. 강인한 의지를 가져야 이겨나갈 수 있는 일이다. 엘리트보다 복을 덜 타고 난 인간들이므로 항상 부지런히, 열심히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 언제나 점퍼 차림인가.

"기능인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 대목장, 기능인협회 회장이라고, 인간 문화재라고 해서 분수 모르면 망가진다. 잠바 입고 내 몸도 낮춰야 돈도, 이득도 온다. 높은 데는 바람 탄다."

- 인간 문화재로 지정되고 보니.

"문화재 값을 하는, 즉 만인이 존경할 수 있는 움직이는 문화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직 정도만이 원칙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살다가 문화재라는 데 얽매이니 너무 무거워졌다."

● 대목장의 魂

수더분한 인상이지만 일단 일에 들어갔다 하면 사람이 바뀐다. 최기영씨는 "우리 목수들은 말할 때도 구조적"이라고 했다. 잔심부름, 아궁이 불때기, 나무 나르기, 켜기, 대패질을 스스로 체득하며 나무, 흠, 기와 등의 원리를 깨우쳐 나가며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은 가는 길만 가르쳐 줄 뿐, 나머지는 스스로 짜야 했던 세월이었다.

마름질(나무를 선별하는 일), 바슴질(톱으로 자르고 따내기), 이음새(천년을 버티게 하는 기술의 요체) 등은 기능과 예능이 겹친 일이었다. "예능이란 크기, 장소, 기능에 따라 다른 시각예술이란 점에서, 기능이란 역학에 따른 골조란 점에서 그렇죠." 과연 구조적 설명이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한국전통문학교와 함께 '전통 건축ㆍ공예 용어 표준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중 전통 건축ㆍ공예계로 깊이 침투한 일본어의 문제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릇을 빚는 발물레는 '로구로'에, 쇠를 녹이는 전통의 가마는 '노보리' 가마에, 줄이나 끌은 '야스리'나 '기리'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대학생들이 종종 자문을 구할 때 건축 용어를 일본말로 하는데,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지요." 왜곡된 일본 용어가 너무 깊이 스며들어 있어 젊은이들은 그것들이 아예 우리 고유의 말인 양 착각할 정도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이 용어 사전이다. "파벌에 따라 말이 달라지니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적ㆍ객관적 차원으로 진행돼야 할 사업이죠." 표준화 작업의 객관성을 위해 학술회의 등 전문가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현재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과 최공호 교수 등 전문 인력이 자문진으로 함께 한다.

장병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