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중 아는 미국 교수를 만났더니 한 국회의원의 근황을 물으면서 그의 활동이 좀 뜸한 것 같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실은 의정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물었더니 답이 걸작이었다. 미국 TV와 신문에 나오는 한국 국회의 몸싸움 장면에 그 의원이 전혀 안 보였다는 것이다. 비교적 젊은데 선봉에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 교수는 웃었다. 이제는 국제 망신으로 등장한 국회파행,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법안 처리 의석비율 적용 어떨까
혹자는 다수결에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수결을 따르면 소수의 목소리가 늘 무시된다. 그렇다고 소수가 다수의 뜻을 좌절시키는 것도 안 될 일이다. 해답은 여야가 절충안을 만들어 합의 처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절충안을 합의 처리하면 다수결로 하는 결정에 비해 국민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국회에서는 왜 이런 합의가 일어나지 않는가?
분쟁에서 합의가 일어나는 것은 합의가 미합의보다 당사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는 합의를 안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원안을 밀어 붙이면 결국 통과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 반면 야당은 끝까지 반대하다가 여당을 굴복시키면 대성공이고 만약 법안이 날치기로 통과 되면 여당에 상처를 주면서 선명성을 과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여당은 소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원안을 밀어 붙이고, 야당은 다수에 대한 존중 없이 무리한 반대를 하는 것이다.
합의가 가능하려면 무리한 욕심을 내며 합의에 불응하는 정당이 낭패를 보아야 한다. 여당의 낭패는 국회의장이 법안 상정을 거부하는 것이며, 야당의 낭패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당이 타협 없이 질주한다고 국회의장이 판단하면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법안 상정을 거부한다는 확고한 의사를 여당에 알려야 한다. 반면 여당이 적정한 절충안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무리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국회의장은 시한을 설정한 후 경호권 발동을 포함하는 직권상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야당에 알려야 한다.
이 때 국회의장이 절충안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정당별 국회 내 지분율, 즉 의석비율을 쓰면 된다. 여야의 의석 비율이 6대 4라면 여당안을 60%, 야당안을 40% 반영하여 절충안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10개 다른 법안이 있다면 6개 법안은 여당안을, 4개 법안은 야당안을 따르는 방식도 가능하다.
혹자는 의석비율이 아니라 사안별로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 뜻에 따라 절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의 뜻은 정당이 반영하는 것이며 여론조사의 신뢰성도 문제이므로 의석비율을 따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 부합한다. 단 총선에서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비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문제는 별도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장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어느 정당이 의석비율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지 알기 어렵다. 언론도 양분되어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중립적인 판정을 할 수 없다. 결국 무리한 욕심을 내는 정당에게 낭패를 안겨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기관은 국회의장 밖에 없다. 국회의장의 중립성 보장을 위해 현행 무당적 규정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추가하자. 그리고 국회의장의 결정을 철저히 존중하자. 물론 국회의장은 판단 배경을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며 그 중립성에 대해서는 국민과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절충안 만들게 하고 간극 좁혀야
나아가 국회의장은 Kolb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하는 적극적인 '딜 메이커(deal maker)형'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여야에게 합리적 절충안을 요구하고 두 절충안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직접 절충안을 내어 놓고 상정거부와 직권상정을 무기로 여야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 국회의장이 신뢰 받는 조정자가 되어야 국제망신, 파행 국회에서 졸업할 수 있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영국 CEDR 인증 조정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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