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웃는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 장바닥을 떠돌던 유랑광대의 토막극이 아득히 낯설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유랑극단은 면면촌촌을 돌면서 공터에 포장을 치고 판을 벌여 창극을 하면서 약을 팔아 이문을 남겼다.
웃기는 게 광대 몫이었다. 말끝마다 웃겨야 광대라고 했다. 광대는 막간에 등장했는데, 주연 배우보다 더 인기가 높았다.
강준섭(76ㆍ진도다시래기 예능보유자)씨는 그렇게 한세상을 건너 온 마지막 유랑광대다. 진도의 당골(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마친 열세 살 때 길을 나서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떠돌고 있다.
그의 장기는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 역. 눈을 꿈적대며 지팡이 짚고 나오는 순간부터 객석에선 바로 웃음보가 터진다. 눈과 입이 돌아가고 볼을 씰룩대며 지어내는 온갖 표정은 오직 그만이 갖고 있는 더늠이다.
문헌에 이름만 나와 있지 아무도 출 줄 모르는 도굿대춤(절구춤)과 삐다구춤(뼈춤), 장님이 경을 읊으면서 노는 '경문유희'의 배꼽 잡는 사설 또한 오직 그만의 것이다.
얼마나 웃기는지 노인들은 웃다가 기운이 빠져서 일어나지도 못 한다. 그러고선 한마디씩 한다. "저 잡놈을 워떤 X가 낳았는가. 콕 씹어먹고 싶네." 좀 요상하긴 해도 최고의 극찬이다.
그가 3년 만에 서울 무대에 선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홍렬)이 운영하는 한국문화의집 코우스(KOUS)에서 20~31일 하는 '유랑광대전'의 주인공이다. 코우스 공연장은 최근 개보수를 해서 250석의 전통예술 소극장으로 거듭났다. 공연 준비차 서울에 올라온 그를 12일 만났다.
"엊그제 광주MBC에서 공연을 했는데, 난리가 나부렀어. 여자들이 오줌을 질질 쌌으니께."
동석한 부인 김애선(66)씨의 말이다. 1960년대 유랑극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뺑파막'의 심봉사와 뺑파 등 여러 토막극의 명콤비다. 부부가 외우고 있는 대본만 해도 몇십 권은 된다.
"휘뚜루마뚜루 다 했어. 사대 명작(춘향전 심청전 흥보전 장화홍련전)을 많이 했지. 코메디도 하고 현대극도 하고. 현대극? 많어. '안개 낀 목포강' '어머니 울지 마세요' '두 번 맺은 사랑' '섬색시'…. 여기저기 댕김시롱 유랑극단 딸딸이(손수레에 소품이나 장치를 싣고 가면 달그락거려서 '딸딸이'라 한다)로 울릉도 제주도까지 안 간 데가 없지."(강준섭)
"말도 말어. 60년대에 이 양반 양복이 40벌이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 별명이 칠면조여. 아침에 새 옷 입고 다방 가서 자랑하고 들어와서 다시 옷 갈아 입고 나가. 하루에 대여섯 번 갈아 입어. 구두도 양복 기지하고 같은 재료로 맞춰 신고. 60대까지 그랬어. 진도 와서 한 번 물어보씨요. '백구두' 하면 다 알어."(김애선)
재주도 최고, 인기도 최고인 이 토종 광대가 보기에 요즘 창극은 어떤지 묻자 자부심 어린 답이 돌아왔다.
"요즘 창극이니 마당놀이는 신식으로 하대. 우리가 하는 건 구식이고. 옛날 어른들한데 배운 대로 판백이로 혀. 오네지날(오리지널)이라고 허등가. 헌데 국립극장(국립창극단을 가리킴) 아그들이 아무리 잘해도 우리가 부부 간에 하는 거 못 따라와."
그는 연기뿐 아니라 소리도 뛰어나다. 씻김굿 명인 박병천씨는 "준섭이가 제대로 배웠으면 천하명창이 됐을 것"이라 한다. 요즘 판소리 하는 소리꾼 중에 그만큼 청이 높은 사람이 없다.
"내가 창을 했으면 하늘 배꼽을 뚫었을 것이여. 배(우)긴 배왔는데, 소리만 해선 밥을 못 먹어. 춥고 배고?께 연극으로 돌렸어. 연극해서 쌀밥 먹게 됐으니 이 길로 들어서길 잘 했지."
이번 공연에는 부인 김애선씨, 오랜 동료인 유랑광대 손해천(75)씨, 채상소고춤의 명수 김운태(45)씨 등이 함께한다. 장단을 쳐서 길을 여는 오채질굿으로 시작해서 놀보막, 채상소고춤, 경문유희, 뺑파막을 보여준다.
놀보막은 놀보가 마당쇠 글 가르치는 대목이고, 뺑파막은 심봉사가 맹인잔치 가는 길에 뺑덕이네가 다른 봉사와 눈이 맞아 달아나는 대목이다. 관람료 5000원. (02)567-8026
오미환 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