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응씨배 결승전에서 이창호와 최철한, 두 대국자 못지 않게 주목을 끈 인물이 있었다. 세계 바둑계서 '살아 있는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엔(吳淸源)선생이다.
두 달이 지나면 만 95세가 되는 선생은 건강이 좋지 않아 그동안 일본 내의 각종 행사 초청이나 바깥출입을 삼가왔다. 하지만 응씨배에 대한 애정이 워낙 각별해 이번 싱가포르 결승전 참관은 물론 심판장 역할까지 기꺼이 수락했다고 한다.
부인 나카하라 가즈코 여사(87)와 함께 무려 7시간반동안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서 날아왔는데 현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선생이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탄 때가 2004년 3월 베이징에서 열렸던 제5회 응씨배 결승전 참관 때라고 한다.
그 해 가을 집에서 낙상을 해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인공 뼈를 넣는 수술을 한 뒤로 거동이 불편해 간단한 외출 말고는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평생을 바둑과 더불어 살아온 그에게는 '바둑이 곧 생명'이다. 바둑을 두면 백수가 가까운 나이도 잊는다. 요즘도 평소 집에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바둑을 둔다는 선생은 "바둑을 두면 몸은 좀 피곤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진다"고 했다.
결승 1국이 있던 날도 오전에 젊은 기사들과 세 시간 가량 바둑을 둔 뒤 점심시간에 잠시 눈을 붙였는데, 잠에서 깬 뒤 첫 마디가 "지금 바둑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였다. 주위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해 오후에는 대국장에 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지금이 중요한 승부처다. 꼭 가봐야겠다"며 검토실로 가서 대국 진행을 지켜 봤다.
고령으로 약간 가는 귀가 먹고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몸은 수척했지만 눈매는 여전히 맑고 정신도 또렷했다. 바둑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승부처를 짚어내는 능력 또한 예전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오전 중 이창호의 좌변 행마가 무겁고 효율적이지 못했으며 오후에는 최철한의 우변 공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국이 끝난 후 싱가포르바둑협회 관계자가 이 같은 선생의 의견을 이창호에게 전하자 이창호도 '옳은 지적'이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를 전해 들은 선생은 "이창호는 나의 사질(동문 조카)이다"라며 무척 흐뭇해 했다고 한다. 선생이 세고에 겐사쿠의 제자로 조훈현과 동문 사형 제간이므로 이창호에게는 사숙이 되는 셈이다.
이에 앞서 결승 1국 전날 저녁에 티옹바루플라자에서 열린 전야제서 선생을 만난 이창호와 최철한은 중국어에 능통한 김수장 단장의 소개로 바둑계 대선배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렸고 선생은 자애로운 미소로 어린 후배들을 격려하고 선전을 기원했다.
선생은 또 제6회 응씨배 결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하산일국기(河山一局棋)'라는 친필 휘호를 남겼다. 선생의 깊은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대자연의 조화가 곧 한 판의 바둑과 같다'는 의미가 아닐지. <타이젬>타이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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