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시골에서 부쳐온 무에서 파랗게 무청이 돋아 올랐다. 무국을 끓여 먹으려 친정에서 가져와놓고는 연일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월의 반을 사무실에서 지냈다. 마침 봄방학이라 큰애도 친정에 맡겨둔 채 마음껏 일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갈 때마다 한기가 돌아 내 집 같지 않았다. 그새 스위치 순서도 잊어 온 집안불을 다 켰다 끄기도 했다.
무는 친정에서 가져온 그대로 검은 봉지 안에 들어 있었다. 한 뼘 정도 무청이 자라 있었지만 만져보니 가져올 때처럼 단단했다. 겨울 무처럼 맛있는 게 또 있을까. 무국을 끓여놓으면 살강살강 씹히는 무에 달큰한 국물맛까지 일품이다. 아직은 무국을 끓여 먹을 수 있다, 좋아했는데 또 며칠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큰애 봄방학이 끝나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갔다가 무 생각이 났다. 베란다로 갔다가 함성을 지르고 말았다. 무청이 무성한 데다가 꽃까지 피었다. 무꽃은 처음 보았다.
엄지 손톱만한 꽃들이 동글동글 맺혀 있다. 대체 어떻게 해서 꽃까지 필 수 있었을까. 아하, 무는 제 속의 수분을 끌어올려 꽃을 피워낸 모양이다. 쪼글쪼글해진 무가 꼭 어머니 같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지 않았다면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무를 화분에 심어두고 요 며칠 무꽃을 보고 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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