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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공짜 상품권

입력
2009.03.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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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는 구정을 앞두고 1월에 국민 1인당 3,600대만위안(16만원)의 소비권을 나눠줬다. 불황기에 개인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한 이 정책은, 이후 한동안 백화점 매출이 급신장하면서 꽤 성공한 듯 보였다. 도쿄에서 만난 한 대만 기자 역시 "국내총생산(GDP)의 6% 정도로 소비를 늘리겠다는 게 정부 목표였다"며 "그만한 성과가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국민 대부분이 이 정책을 반기며 흔쾌히 소비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행이 된 상품권ㆍ현금 지급

중국도 일부 지방정부가 상품권을 발행했고 호주는 지난해 아예 현금을 지급했다. 일본도 지방자치단체별로 5일부터 정액급부금이라는 현금을 나눠주고 있다.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상품권이나 현금을 뿌리는 게 일본에서 처음은 아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에도 정부 재원을 바탕으로 지자체가 일종의 상품권인 지역진흥권을 발행했다. 총액 7,000억엔대에 이르는 이 진흥권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노령복지연금이나 장해기초연금 수령자, 생활보호대상자나 복지시설 입소자, 15세 이하 자녀가 있는 세대주나 65세 이상 비과세자 등 저소득자 생계 지원 성격이 강했다.

문제는 이 진흥권으로 실제 소비가 늘었느냐는 것이다.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실제 소비 효과는 발행액의 10%에 불과했다. 정책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흥권으로 소비를 하고 현금은 가지고 있으려 할 것이다. 진흥권을 나눠준 만큼 소비가 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은 바보라서 속기 쉽다고 여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한 평론가의 말이 옳았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는 현금 또는 상품권 지급과 효과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소득세 환급을 실시했다. 한 달 만에 개인소비가 급증해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지만 7월 이후에는 경기가 더 악화해 소비는 다시 줄었다. 한 두 달 효과를 보겠다고 미국 정부가 1,070억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재정 악화를 감수한 셈이다. 대만이나 중국처럼 일시적으로 소비 진작에 성공하는 경우를 확대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같은 전례에다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여서 이번 일본의 정액급부금은 정책 발표 당시부터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야당은 물론이고 언론도 비판 일색이었다. 엄청난 적자 재정에서 소비 활성화 효과마저 의문인 정책에 2조엔을 쏟아 부을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과거 진흥권과 달리 전국민에게 일제히 지급하는 돈이다 보니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 여당에서도 여유 있는 사람은 안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받겠다, 안 받겠다로 의견이 갈려 갈팡질팡했다. 그 돈을 학교 내진화(耐震化) 공사와 노령자 복지 정책, 실업자 구제 기금에 쓰자는 야당의 대안이 훨씬 설득력 있다 보니 일본 언론의 모든 여론 조사에서 70% 안팎의 국민이 지급에 반대했었다.

더 의미 있는 경기활성화안을

하지만 선거를 앞둔 여당이 놓치기 아까운 정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자민당은 의원 수로 밀어붙여 이 법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비판하던 국민도 현금을 손에 쥔 지금 만면에 미소다. 지난번 지역진흥권과 달리 이번 정액급부금은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받게 된다. 하지만 어쩐지 개운치 않다. 경제 효과를 따지기 앞서 일본 정부가 왠지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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