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중 준비 초6 신모군의 하루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신모(12)군. 저녁 식사후 책을 읽거나 컴퓨터 게임을 즐길 시간에 초등생 전문 영어 학원에 있었다.
6일 오후 9시40분께 강남구 대치동 영어학원 건물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마자 초등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제중 대비반 수업을 끝낸 신군은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에게 지친 표정으로 투정을 부렸다."학교 숙제도 다 못했는데 학원 숙제까지 하고 자면 또 12시가 넘겠지?" 엄마 최모(41)씨는 "국제중에 가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로 겨우 아들을 달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 서울에 두 곳의 국제중이 문을 연 이후 대치동 목동 등 서울 지역 주요 학원가는 국제중 열풍이 거세다. 초등생들이 고3 수험생처럼 한바탕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다.
신군 엄마는 개학과 동시에 아들의 '국제중 대비 공부 일정표'를 새로 짰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 3시30분까지 영어학원으로 달려간다. 월.수.금요일에는 영어 단어책과 문법책 등을 활용해 원어민 강사의 영어 수업을 받는다. 사회와 과학은 미국의 초등 6학년 교과서가 교재다. 수요일에는 토론과 에세이 집중 수업이 있다.
영어 학원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수학 과외를 해야 한다. 다음달 한 사립대 주관의 수학경시대회 참여를 위해서다. 경시대회에 입상하면 국제중 진학에 유리하다는 게 신군 엄마의 전언이다.
학원 수업과 과외가 끝난 밤 10시가 돼야 늦은 저녁으로 허기를 때운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쉬는 것도 잠시. 밤 11시부터 한 시간 정도는 엄마가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준비한 환율문제와 남북문제 등 초등생 수준을 뛰어 넘는 경제ㆍ사회적 이슈들을 공부한다. 면접 준비 과정이다.
학교→ 학원→ 과외로 이어지는 빡빡한 공부 스케줄에 초등6학년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보통 밤 12시가 넘는다.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도 안쓰럽다는 표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최씨는 "국제중 준비는 많은 초등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당연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하지만 국제중이 '로또 입시'여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경우 아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털어놨다.
학원가에서는 국제중 입시가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는 시각이 많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최종 합격자를 추첨으로 선발하는 기형적인 국제중 전형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광풍'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너무 소모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전형의 정상화 과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외고 준비 중3 김모양의 하루
외국어고 입시는 사교육의 진원지나 마찬가지다. 올해 서울에 2곳의 국제중이 문을 열면서 국제중 입시가 사교육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게 됐지만, 외고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국제중과 함께 사교육을 양분하는 양상이 고착화 하는 분위기다.
서울 노원구 A중 3학년 김모(15)양의 목표는 국내 최고 명문 외고 진학이다. 그의 도전에 온 가족이 매달리고 있다.
평일 오후 4시. 김양의 사교육이 본격화 하는 시간이다. 엄마 박모(49)씨가 준비한 오렌지와 단감 등을 먹으면서 영어학원에서 배울 지문을 읽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 주가 하락 등 최근 경제상황을 다룬 2,000자가 넘는 영자신문 기사지만 읽는 데 단 몇 분 걸리지 않는다. 엄마는 "외고 준비를 위해 초등학교때부터 영어를 공부해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후 5시30분께 김양은 엄마가 모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외고 입시 전문 학원으로 향했다. 영어 말하기ㆍ쓰기, 듣기ㆍ읽기, 문법 수업을 하는 데 족히 3시간은 걸렸다. 같은 반 8명은 '죽기살기로' 공부에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외고 시험까지 10개월 정도 남아 있으나, 벌써부터 실전모의고사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 학원 강사는 "적어도 중2때까지 영어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외고 진학 생각은 접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양에게 외고 입시반 수업은 사실 간단한 '워밍업' 수준이다. 오후 9시께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까지 예습과 복습의 강행군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고 준비생 엄마의 일과는 수험생과 거의 동일하다. 밤 11시께 졸린 듯 보이는 딸을 독려해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잠을 쫓게 하는 일은 고스란히 엄마 몫이다. 박씨는 "딸이 외고 준비를 본격화 한 중2때부터 먼저 잔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딸이 외고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교육비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외고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문대 진학이 아무래도 수월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입시전문가들은 박씨와 비슷한 사고를 가진 학부모들이 대부분인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고 있다. 서울 C중 교무부장 정모교사는 "외고에 들어가는 자녀가 졸업 후 외국어 관련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부모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며 "외고 진학이 명문대나 좋은 직장을 갖는 출발선으로 인식하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외고 대비용 사교육'은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 외고 준비 사교육비 1년에 1800만원은 기본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1년간 사교육비를 얼마나 쓸까. 올해 자녀가 외고에 입학한 학부모나 입시학원 관계자들은 최소 1,000만~1,800만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 강의를 듣는다. 이들 두 과목은 기본이라는 게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두 과목의 한달 학원비는 각각 최소 40만원 선이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하는 12월 말부터 다음해 외국어고 입시가 있는 12월 초까지 11개월로만 따져도 영어, 수학 강의료만 880만원이다.
여기에 9월부터는 면접에 대비해 3개월간 언어와 사회영역 '최종정리 특강'이 있다. 외고 입시반 학원생에 한해 두 과목 특강을 한달 20만원에 해준다. 세 달간 모두 60만원인 셈. 따라서 학원비 총 940만원, 여기에 교재비를 합치면 대략 1,000만원이 된다.
그러나 1,000만원은 최소 금액이라는 게 학부모와 학원측의 설명이다. 영어학원의 경우 보통 '회화 옵션'이 추가돼 월 15만원이 더 든다. 수학은 특별한 옵션이 없지만 영어는 회화 강사를 따로 두어야 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학원측은 말했다.
학원 외에 개인과외 비용도 만만찮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학원장 A씨는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대학생, 학원 강사 등으로부터 영어, 수학 과외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고 입시생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과외 교사인 경우 일주일에 2~3회, 1시간 수업에 적어도 월 40만원은 줘야 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한 달이면 두 과목 과외비 80만원, 11개월에 880만원이 추가된다. 따라서 전체 외고 대비 사교육비는 총 1,880만원으로 늘어난다. A씨는 "지난해 입시부터 수학 과목이 빠졌지만 입학 전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은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과외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아들이 한영외고에 입학했다는 김모(44)씨는 "남편의 연봉이 7,000만원 정도여서 저축을 좀 줄이는 정도로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교육시킬 일이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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