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로) 복귀하는 데 관심 없습니다. 이런 기회와 권한을 얻기가 어디 흔한 일입니까."
유희상(53ㆍ1급ㆍ사진) 규제개혁추진단장은 '전봇대'를 뽑는 남자다. 전봇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작년 1월 대불산업단지를 둘러본 뒤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적한 것. 규제개혁추진단(http://regulation.korcham.net)은 이런 전봇대나 대못을 뽑기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산하에 작년 4월 설치된 민관합동기구.
유 단장은 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규제개혁이 보람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규제개혁은 현장에서 듣고, 이를 부처와 협의해 고치고, 사후 점검을 하는 총체적인 서비스"라며 "기업들이 절실히 원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안 됐지만, 규제개혁의 핵심은 현장에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현장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곳은 경기 포천의 C기업. 미생물 처리공법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유기농 사료로 만드는 이 기업은 새 설비를 들여놓고도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존 '관리지역'을 '보전관리' '생산관리' '계획관리'로 세분화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C기업은 세분화 이전에 지방자치단체 허가만 얻으면 공장을 신ㆍ증설 할 수 있었는데, 포천시가 C기업 부지를 보전관리지역으로 정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보전관리지역에서는 아무리 좋은 친환경 설비라도 새 기계는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 단장은 "친환경 시설인데도 부지 규모가 1만㎡(계획관리지역 지정 최소 면적) 미만이라는 이유로 부지용도가 자연환경보존을 위한 보존관리지역으로 정해졌다"며 "친환경 기업이 환경규제 탓에 규제를 받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달 포천시를 방문해 문제점을 설명한 데 이어 이달 중 국토해양부와 시행령 개정을 협의할 예정이다.
최근 방문한 거제의 한 조선소에서는 '무늬만 도로'인 조선소 부지 내 해안도로가 대못이었다. 조선소 부지는 통상 바다를 메워 조성되는데, 관련 법률에 따라 사유지임에도 해안선이 공유지라는 이유 탓에 조선소는 의무적으로 해안도로를 만들어 국가에 넘겨줘야 한다. 하지만 조선소 내 해안도로는 외부 해안도로와 연결되지 않아 실제 도로 역할을 하기 보다는 선박 제작을 위한 작업장으로 쓰일 수 밖에 없다.
"조선소 내 해안도로는 공용도로 역할을 잃은 만큼, 조선소가 용도에 맞게 쓸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바뀌거나 예외조항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규제개혁추진단의 입장이다. 이 문제 역시 관련 부처에 전달됐다. 행시 23회 출신으로 30년간 공직에 몸담아온 그는 지금이 가장 보람 있는 때라고 했다. "남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하게 돼 기쁩니다." 그는 이달 중 경남 울산을 시작으로 구미 화성 이천 등을 방문해 뽑아야 할 대못이 없는지 챙겨볼 예정이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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