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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변호인단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찾아와 면담/ "한국 피폭자 보상에 힘이 됐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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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변호인단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찾아와 면담/ "한국 피폭자 보상에 힘이 됐으면… "

입력
2009.03.0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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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廣島)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김순분씨 맞습니까?"

"예, 지가(제가) 김순분이라예."

7일 경남 합천군 합천사회종합복지관 3층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사무실. 일본에서 온 8명의 변호사들과 합천지역 원폭 피해자들이 마주 앉았다.

일본 변호사들은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보상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국내 피폭자들을 대신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이 곳을 방문했다. 평소 인적이 드물었던 이곳에는 이틀간 300명의 피폭자들이 몰려들어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부모와 함께 13살의 어린나이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김순분(81ㆍ합천군 초계면) 할머니는 "갑자기 불이 번쩍하면서 집이 무너져 내려 인근 대나무 밭으로 도망갔다"면서 "그러나 여섯 살 남동생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잔해에 깔려 지금까지 한쪽 발을 못쓰는 장애인이 됐고 나도 만성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끔찍했던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합천을 찾은 일본인 변호사 중 3명은 재일동포 2세. 충북 청주가 고향인 최신의(50)씨는 2001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해 유일하게 통역자 없이 우리말로 피해자들과 면담했다.

1998년 국내 원폭피해자의 보상청구 소송 때부터 변호를 맡은 7명의 변호인단에 합류해 이번에 처음 합천을 방문했다. 최씨는 "반드시 소송에서 이겨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피해실태 조사는 2007년 11월 1일 일본최고재판소가 '피폭자가 일본 국외로 거주지를 이동한 경우 건강관리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402호 통달조치)한 것은 일본 정부의 과실이므로 이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피해자 1인당 120만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이 판결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폭자 40여명을 제외한 국내 피폭자에 대한 보상을 미루고 있다.

합천원폭지부는 지난해 75명에 이어 이번에 300명의 피폭자 소송을 일본 변호사에 위임해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일본정부를 상대로 '1인당 120만엔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낼 예정이다.

이날 합천에는 1998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첫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를 이끌어 낸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곽기훈(86) 명예회장도 함께 방문해 도우미 역할을 했다.

또 10여년에 걸친 한국인 피폭자 면담과 조사결과를 토대로 2003년 한국인 원폭피해자 종합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책 '한국의 히로시마'를 발간한 이치바 준코(市場淳子ㆍ53)씨가 참석해 유창한 한국어로 통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평소 원폭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71년 오사카에서 결성된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의 모임'에 참가, 1979년 이후 수십 차례 합천을 방문하는 등 한국인 피폭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치바씨는 "(합천)시장에 가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합천에는 원폭피해자가 많다"면서 "지난 10년간 재판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한국 피폭자들을 위해 계속 싸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합천에는 국내 원폭 피해자 2,650명 중 가장 많은 645명이 거주하고 있어 1973년 국내 최초로 원폭진료소가 설치됐으며, 1996년에는 국내 유일하게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들어서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고 있다. 일제에 징용돼 히로시마로 끌려가거나 속아서 간 합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생긴 결과다.

일본 변호사들은 7일 오후부터 8일 오전까지는 대구지역 피폭자들을 면담한 뒤 이날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아 피폭자 소송을 돕는데 비해 한국정부의 피폭자 지원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다. 합천원폭지부 심진태(67) 지부장은 "피폭자 실태조사는 물론, 피폭 2세에 대한 건강검진 등 피폭자들의 오랜 요구가 수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국내 유일의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입주를 희망하는 대기자가 200명에 달하고 있지만 요양시설 확충도 요원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조진래(합천) 의원이 지난해 11월25일 의원 103명의 서명을 받아 대표 발의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그 피해자 자녀의 실태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합천=이동렬 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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