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일퇴. 한 치의 우열도 가리기 힘든 팽팽한 접전이었다. '돌부처' 이창호와 '독사' 최철한이 우승 상금 40만달러(약 6억원)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맞대결을 펼친 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 5번기 1, 2국이 3일과 5일 싱가포르 플러턴호텔에서 열려 서로 1승1패를 기록했다.
제1국에서는 이창호가 이겼지만 2국에서는 최철한이 승리했다. 이로써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이 22승 21패(이창호 기준)로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대국인 결승 3국이 오늘(7일) 상오 10시30분(한국 시간)부터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결승 5번기가 사실상 3번기로 줄어들었으므로 제3국에서 승리한 쪽이 절대 유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누가 먼저 2승 고지에 올라설 지는 말 그대로 전혀 오리무중. 바둑계 전문가들도 먼저 2승을 얻는 쪽이 마지막 승자가 될 것이라는 원칙론에만 입을 모을 뿐 누가 이길 것이라고 섣불리 예측을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체적인 성적에서는 이창호가 단연 앞서지만 서로 간의 맞대결 결과는 조금 다르다. 상대 전적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그동안 타이틀을 놓고 겨룬 6차례 번기 대결에서는 오히려 최철한이 앞서 있다.
2004년 국수전에서 우승하면서 이창호 왕국에 처음으로 흠집을 낸 최철한은 이후 기성전과 GS칼텍스배서 잇달아 승리해 이창호의 천적 역할을 해 왔다. 가장 최근의 대결인 올 초 맥심커피배 준결승서도 최철한이 이겼다.
두 기사는 기풍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독사', '올 인 보이'라는 별칭처럼 상대의 대마를 단숨에 때려잡는 치열한 전투를 즐기는 최철한과 '돌부처' '신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정확한 형세 판단에 탁월한 종반 마무리 솜씨를 겸비한 이창호의 맞대결은 서로의 장점을 누가 더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승 1, 2국에서도 역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쪽이 승리를 가져 갔다. 1국에서는 백을 쥔 이창호가 최철한의 공격을 침착하게 따돌린 후 종반 들어 정교한 마무리로 8점(집)이나 되는 덤의 이점을 잘 살려 3점승을 거뒀다.
"최철한이 포석에서 나쁘지 않았으나 특기인 공격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 이창호는 수세에 몰리면서도 상대의 틈새를 정확히 찔러 갔다." (우칭위엔의 국후 감상)
결승2국은 반대로 백을 쥔 최철한이 실리 작전을 펼쳐 이창호의 공격을 유도해 자신의 장기인 전투 바둑으로 이끈 뒤 과감한 몸싸움으로 승기를 포착했다.
이창호도 이에 맞서 두 차례나 벌점을 받으면서 장고를 거듭, 투혼을 불살랐지만 반면으로 5점을 남기는데 그쳤다. (응씨배는 생각 시간이 각자 3시간 30분으로 초읽기가 없는 대신 시간을 다 쓰면 35분당 2점씩 벌점을 내야 한다. 시간 연장은 3회까지 할 수 있으며 이후는 실격패를 당한다.) 결국 덤 8점에 벌점 4점까지 추가돼 최종 결과는 백 7점승이 됐다.
이번 결승전은 두 대국자에게 앞으로 바둑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이창호는 그동안 무려 23번이나 세계타이틀을 품에 안았지만 요즘은 '너무 오래 굶어 허기가 질 지경이다'. 2005년 3월 춘란배 제패 이후 만 4년 간 메이저급 국제 기전에서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마이너급인 중환배서 겨우 한 번 우승했을 뿐 준우승만 다섯 차례다.
올해도 응씨배와 춘란배 결승에 올라 있지만 만일 이번 응씨배를 놓친다면 창하오와 맞붙게 될 춘란배도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지난 4회 대회에 이어 다시 응씨배를 차지한다면 최근 들어 확실히 좋아진 건강 상태에 힙입어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철한의 입장은 더욱 절박하다. 우선 4년전 응씨배 준결승전에서 이창호를 제치고 결승에 올랐으나 창하오에게 1대3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1회부터 4회까지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로 이어져 온 한국의 우승 전통에 먹칠을 하고 개인적으로도 첫 세계 타이틀 획득 기회를 놓친 기억이 너무나 쓰리고 아프다.
그 후 급격한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랭킹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가 지난해부터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 얼마 전 맥심커피배 우승으로 3년여만에 무관에서 벗어나며 10위권내로 재진입했다.
아직까지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 경험이 없는 최철한은 그동안 응씨배 결승전을 정조준해서 매우 열심히 컨디션 조절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한편 두 선수가 결승 2국까지 1승1패를 기록함에 따라 제3국에서 누가 이기든 최종 우승자는 4월 21일부터 대만에서 열릴 예정인 결승 2차전(4ㆍ5국)에서 가려지게 됐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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