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한국 야구가 '숙적' 일본에 무너졌다. '참사'로 기억되는 2003년 삿포로아시아선수권에서도,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이렇게 창피한 스코어는 아니었다.
한국은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2차전에서 일본에 2-14, 7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멤버 구성상 한 수 아래임은 인정하지만 충격적인 결과였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하늘을 찌를 듯했던 한국 야구의 자존심은 한 순간에 땅에 떨어졌다. 한국은 이날 패배로 베이징올림픽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대만전을 시작으로 본선 9전 전승을 거쳐 WBC 첫 경기 대만전까지 국제 대회 11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 엄연한 실력차
선수 구성을 보면 일본은 역대 드림팀 가운데서도 최강이다. 일본은 선발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만이 잠시 흔들렸을 뿐, 와타나베 ??스케(지바 롯데) 스기우치 토시야(소프트뱅크) 이와타 미노루(한신) 등 특급 투수들이 줄줄이 투입됐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가 이끄는 타선도 화려했지만 가장 중요한 마운드의 힘에서 '게임'이 되지 않았다. 14실점이 이를 입증한다.
■ 이치로를 놓쳤다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이치로의 중국전 무안타에 대해 "못 치다가도 어느 순간 치는 선수"라며 한국전 '부활'을 경계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치로는 1회 첫 타석에서 김광현(SK)으로부터 우전안타로 물꼬를 튼 것을 시작으로 5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다. 1회 첫 타석에서 이치로를 잡았더라면 경기 흐름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이치로는 상징적인 일본의 '힘'이자 득점 루트였다.
■ 분석에도 당했다
'김광현을 깰 비책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던 일본 언론이 더 큰 소리치게 생겼다. 실제로 일본 타자들은 철저한 분석과 대비로 김광현의 변화구 공략법을 찾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김광현에 당했던 수모를 되갚기 위해 직구를 버리고 철저히 슬라이더만 노려 쳤다. 여기에 김광현의 직구 스피드도 140㎞ 초반에 그쳤다.
■ 분위기도 외면했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 야구가 일본을 이길 수 있던 것은 야구 실력보다는 승부욕과 집중력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회 전부터 추신수(클리블랜드) 문제로 갈팡질팡한 반면 일본은 '타도 한국'을 선언하며 일찌감치 최강 멤버를 구성해 훈련에만 몰두했다.
아시아예선 개최국 일본의 일정상의 노골적인 특혜도 찜찜하다. 일본은 5일 중국과 경기를 치르고 6일 하루를 쉬었다. 투구수 제한이 있는 대회에서 있을 수 없는 부당한 일정이다.
도쿄=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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