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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어느 해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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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어느 해거름

입력
2009.03.09 04:00
0 0

진이정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1993년에 타계한 진이정 시인은 나에게는 문우였고 시에 대해서라면 긴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다방에 앉아서 토론을 하곤 했던 벗이었다. 진이정이 죽었을 때 나는 어학과정을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밟고 있었다. 남의 나라 언어를 배우며 어학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었을 때 그가 병원에 실려갔고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절시인이라는 한자 조합어를 떠올리면 우리 세대는 빛나는 시인 기형도가 있고 나, 개인적으로는 진이정이라는 벗이 있다.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 <거꾸런 선 꿈을 위하여> 라는 시집에 해설을 썼던 황현산 선생님은 진이정은 마치 그의 죽음을 알았다는 듯 마지막 시편들을 썼다고 말했다. 한없는 지적인 호기심, 세상에 대한 따뜻함과 그 따뜻함을 배반하는 세상에 대해 열렬하고도, 깊은, 시를 쓴 자, 진이정.

그의 제사는 어느 절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나는 서울에서 그의 제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제삿날, 등성이에 머물고 있었던 해는 정확히, 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던 시인의 눈에 머물던 해거름의 지는 해. 우리는 언제나 어린애이고, 영혼은 이렇게 어떤 시간을 살아가도 낯설게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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