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가장 놀라운 영화인으로 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꼽았다. 에버트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위대한 감독의 위치에 이르렀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스트우드의 시작은 미약했다. 신인시절 B급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그는 TV드라마를 기웃거릴 정도로 할리우드에선 찬밥 신세였다.
그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린 1964년작 '황야의 무법자'도 훗날 거장으로 불린 세르지오 레오네가 연출하고, 엔리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했다지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일본영화 '요짐보'를 표절한 B급 영화에 불과했다.
구로사와에게 10만 달러를 배상하고 한국, 일본, 대만에서의 흥행권과 세계 흥행수입의 15%를 넘겨야 했던 '황야의 무법자'의 암울한 에피소드는 이스트우드의 당시 배우로서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19일 개봉하는 '그랜 토리노'는 79세의 노장 이스트우드가 마지막 출연을 선언한 작품이다. 늙은 맹수처럼 그르릉거리는 목소리로 비속어를 내뱉으면서도 인간애를 구현해내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지난 삶과 영화인생에 대한 회한이 절절히 스민 회고록처럼 보인다.
미약한 시작에서 창대한 끝을 이뤄낸 이스트우드의 아름다운 퇴장을 예고하는 듯해 영화의 여운은 더욱 깊다.
지난해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한 유명 감독 안소니 밍겔라와 시드니 폴락은 최근에야 '스크린 은퇴식'을 치렀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각각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던 두 감독은 케이트 윈슬렛에게 6전7기 끝에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26일 개봉) 크레딧에 제작자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영화에 숨결을 담은 그들의 열정이 사뭇 놀랍다. 상영이 끝날 무렵 스크린에 그들의 이름과 함께 새겨지는 '…추억하며'라는 문구는 그들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면서 큰 울림을 준다.
사라져 가는 노장들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들의 이름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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