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금융위기 발생이후 수직낙하를 거듭해왔던 기준금리의 향방이 다시 모호해졌다. 워낙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여태까지 인플레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최근 물가가 심상치 않는 오름세를 나타내면서 금리 추가인하에 장애물이 등장한 것이다.
이 달 금리목표를 결정할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금융통화위원들도 추락하는 경기와 오름세를 보이는 물가 사이에서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 시장에선 여전히 0.25%포인트 수준의 추가인하 기대가 크지만, 한은 내에선 동결론도 만만치 않다.
물가의 역공
현재 금통위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환율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4%대로 진입한 1차적 원인도 고환율이 낳은 수입물가 급등 탓이었다. 전세계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는 워낙 환율이 많이 오른 탓에 오히려 인플레 압력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으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그 동안은 물가문제를 뒷전에 밀어두어도 됐고, 오로지 금융시장안정과 실물경제기반 붕괴방지에만 '올 인' 할 수 있었다. 5.25%였던 기준금리를 불과 6개월만에 2%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상황이 좀 달라졌다. 한은은 올 평균 물가상승률 3%를 전제로 공격적 금리인하와 유동성공급을 단행해왔는데, 이젠 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리를 더 내리기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HSBC와 일본 다이와증권 등 일부 외국계 연구기관에서는 심지어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그렇다고 이런 경제상황에서 금리를 올릴 수는 없겠지만, 꿈틀대는 인플레 압력을 감안하면 6개월간 지속되어 온 금리인하 행진에 한번쯤은 '쉼표'를 찍고 가도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한은 내에서 점차 힘을 얻는 형국이다. 한은 관계자는 "환율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금리를 내리면 아무래도 환율에 상승압력이 될 가능성이 높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래도 낮춰야
하지만 시장생각은 좀 다르다. 물가와 경기지표를 놓고 볼 때, 지금은 당연히 경기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4%대 물가가 걱정스러워도, 마이너스(-)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경기지표만 하겠느냐는 얘기다. 유럽중앙은행과 영국중앙은행 등 주요국 통화당국이 계속 금리를 내리는 마당에, 우리만 그대로 있는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시장에선 여전히 금리 인하쪽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환율이 걱정이지만 그래도 경기침체 상황이 더 급해 보인다"며 "큰 폭은 어렵겠지만 0.25%포인트 수준의 인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실 그 동안 0.5%포인트 이상씩 금리를 낮춰왔기 때문에 이번에 0.25%포인트만 낮춰도 충분히 인플레를 염려하는 '속도조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시장기대와는 달리, 확실히 한은의 실무진의 정서는 동결쪽으로 기울고 있다. 하지만 금통위원 결정이 꼭 실무적 판단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인하가능성 역시 크게 열려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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