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절대 이를 닦는 법이 없다. 빤다. 그것도 삼년은 내팽개쳐두었던 운동화 꺼내 솔질하듯 온 힘을 다해서 빤다. 소리도 열렬하다. 칙칵칙칵. 아서, 이 망가져. 걱정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칙칵칙칵. 나는 조금 근심한다. 책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최승범 지음ㆍ이가서 발행)의 제목을 통째로 빌어 짐작하건대, 남편도 무언가를 내색할 수 없어서 칙칵칙칵, 하는 것일 터이므로. 하면 그것은 무엇이라는 말일까? 혹시 반항? 소리,>
마음을 동요시키는 소리는 언제나 있어 왔다. 앓던 아버지가 마룻바닥에 쓰러질 때 나던 쿠궁, 이라든가 딸아이의 첫 풍선이 문틈에 걸려 터질 때 나던 팡, 이라든가 아까워 손도 못 대던 크리스탈 컵에 저절로 금이 가면서 나던 짜그락 짝, 이라든가. 소리들은 개별적이었지만 그것들이 모여 짧게는 하루의 생활이 되었고 길게는 마흔 살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설로까지 비약했다.
소리 없는 이야기가 있을까. 나는 책마다에서 소리를 읽는다. 동서와 고금,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이야기는 소리를 내므로. 맨발로 달리고, 뺨을 때리고, 불을 내고, 편지를 찢고, 심지어는 폭탄까지 떨어뜨리며 말이다. 시끄럽다. 하나 견디다 보면 소리들이 한꺼번에 증발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남는 것은 활자 결정체. 소리들이 시각적으로 계통을 이루는 것이다.
활자로 정리된 소리들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시각에서 촉각으로 영역을 이동한다. 그러곤 나의 어딘가를 쓰다듬거나 때리거나 문지른다. 그럼 이번엔 내가 반응할 차례다. 실컷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옮겨 쓰면 되는 것이다. '그날, 불리지도 않았는데 내 이름이 홀로 향기를 터뜨렸다. 앓고 있는 나를 떠나, 부서지는 햇살을 타고 흩날리는 꽃가루에 묻어 내 이름이, 내 이름이 야단이 난 것이다'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쓴 소리도 어느 누군가를 만질 것이라고 감히 기대하면서.
그나저나 남편의 -반항적인- 이 빨래는 오늘도 계속된다. 칙칵칙칵.
김진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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