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퍼트넘 지음ㆍ정승현 옮김/페이퍼로드 발행ㆍ720쪽ㆍ3만8,000원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의 한 자선단체는 50년을 이어온 모임을 1999년 끝냈다. 그 해 가을 보스턴의 한 고등학교에서 20년을 이어져오던 시가행진 전통도 사라졌다. 미국 사회에서 그렇게 '공동체'란 죽은 말이 돼 버렸다. 미국 노동자의 75%가 "미국의 문제는 극히 심각한 이기심"이라는 답을 내놓은 것이 1992년이다. 20세기의 마지막 몇십년 동안 무수한 지역 단체가 미국에서 사라진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세계화로 개인들의 이동이 확대되고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공동체 의식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독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고, 쌓여가는 불안과 절망, 분노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예를 들어 볼링을 치는 사람은 더욱 늘고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리그 볼링에 가입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혼자 볼링 치기' 현상이 미국을 뒤덮고 있다.
<나 홀로 볼링> 은 1980년대 말 지식사회학 진영에서 생성된, 공동체 개념을 근간으로 사회적 네트워크의 양상을 탐구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분석 도구를 들고 다분히 문화론적으로 미국을 해부한다. 과거 막연하게 '사회적 품성'이라 일컫던 가치들의 현재를 묻는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 데이비드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 , C 라이트 밀즈의 <파워 엘리트> 등을 잇는, 미국 사회의 변동에서 미래를 읽는 정치사회학 서적이다.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로 있는 저자 로버트 퍼트넘(68)은 2006년 정치학계 최고의 상으로 알려진 쉬테상을 수상했다. 파워> 고독한> 미국의> 나>
저자는 연대감과 공유감이 희석되면서 개인의 필요나 결정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의 시상을 해부, 극단적 개인주의의 결과를 캐묻고 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1945~1964년 출생자), X세대(1965~1980년 출생자)의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고립화ㆍ분자화 양상을 읽어낸다. 예를 들어 "미국 운전자들의 45%는 나홀로족"이며 "나홀로 통근의 시간이 매일 10분 늘어나면 공동체 업무의 참여는 10% 떨어진다"는 통계치를 제시한다(355쪽).
경제적ㆍ정치적 권력층에게 연대의식과 자비심이란 철지난 말이다. 게다가 정부마저 조절ㆍ통합 능력을 상실해 악화일로다. 거대 복지국가의 이념 아래 앙상한 시민사회만 남았다. 시민적 품성과 인격에 대한 고려 없이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데 지나친 관심을 쏟아 부은 결과, 공동선과 공동의 가치는 무시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책은 그래서 궁극적으로 미국식 자유주의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지극히 미국적 상황에서 배태된 책이지만 인터넷(책에서는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으로 표현된다)의 역기능에 대한 대목은 우리 상황과도 통한다. 가상세계 특유의 익명성에서 비롯된 극단적 언어와 독설, 철저히 특수화된 사람들끼리만의 커뮤니티로 한정되는 '사이버 분열',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유대의 소멸 등을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책은 문화적 접근방식에 치중, 사회ㆍ경제ㆍ구조적 요인들을 경시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책 속에 제시되는 갖가지 생생한 사례들은 먼 곳의 얘기가 아니다. 시간제, 임시직, 비정규직 등에 관한 논의에서 기시감마저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능숙하고 붙임성있는 '사회적 자본가'라거나, 이웃과의 정기적 접촉이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양상 등은 더 이상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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