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한 한상민(19)군은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중ㆍ고교) 출신이다. 일반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이 학교로 옮기면서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고, 5년 반 동안 이 약속을 지켰다.
"초등학교 때 영어, 수학 학원을 다녔는데 답답하기만 할 뿐 공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사교육에 대한 불신이 생겼죠. 인터넷 카페 등에서 얻은 정보로 내 수준에 맞는 참고서를 골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식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입시위주 교육을 거부하는 대안학교가 최근 역설적으로 대입 성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 경기 성남시 분당에 문을 연 '도시형 대안학교' 이우학교는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생(2명)을 배출한 데 이어, 올해는 한군을 비롯해 5명을 서울대에 보냈다.
졸업생 전체 대학 진학율도 95%에 달한다. 특목고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학교의 성격이나 80여명에 불과한 졸업생 수를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이 때문에 '사교육 없이도 대학 잘 가는 학교'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비결을 배우겠다며 학교를 찾는 교사, 학부모 등의 발길도 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정광필 이우학교 교장은 "(졸업생들이) 좋은 대학에 너무 많이 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창의적 인재교육을 지향하는 설립 취지와 달리 엉뚱하게 '입시명문'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한 걱정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정 교장도 대학들이 이우학교 출신들을 점차 인정하고 있는 점은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한다. 그는 특히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에 기대를 했다.
"2006년 정부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도입할 당시 학생에 관한 서술은 2,000자까지만 입력할 수 있었는데 우리 때문에 시스템을 바꿨어요. 그만큼 꼼꼼하게 기록된 이우의 학생부는 대학들에서 모범사례로 인정하고 있고, 학생들 진학에도 도움이 됐어요. 물론 아직도 점수 위주로 선발하는 대학에서는 이우 출신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지만."
0교시 수업과 반 강제적인 자율학습이 없는 이우학교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자기주도학습'이다. 학교는 오전 8시30분에 시작해 오후 3,4시면 수업이 모두 끝난다.
그 후엔 각자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소모임을 이뤄 부족한 공부를 한다. 학교 '공부방'에서 말 그대로 '자율' 학습을 하기도 한다.
요즘 공부방에 밤 10시까지 남아 '열공' 중인 고3 상익(18)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제아'였다. 이우학교 최초의 교내 흡연, 음주, 폭력 사건 등 각종 '타이틀'을 다 달았다.
그럴 때마다 받은 벌은 선생님과의 상담 또는 농촌봉사기행 등. "선생님들이 혼내기보다 이해해 주려고 애쓰신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그는 벌을 달게 받으며 서서히 바뀌었다. 인턴십 수업을 통해 '진짜' 비행학생들의 심리치료 과정에 참가하며 반성도 많이 했다. 그 후 심리학 전공을 목표로 잡고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이우학교는 체험학습 등 수업 내용뿐만 아니라, 공부 방법에서도 기존 교육의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 중 하나가 학교의 전통이 된 스터디 그룹. 한 학년 위 선배가 자원해서 후배 5~6명을 모아놓고 수학, 영어 등을 가르치는 모임인데, 고3 학생들은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찾아와 가르친다.
또 같은 반 친구끼리는 수업시간 자료나 요약정리를 인터넷 카페에 올려 공유한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졸았던 친구까지 배려하며 지식은 물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자연스레 깨친다.
다양한 형태의 소모임 활동도 활발하다. 올해 한양대 인류학과에 입학한 차명식(19)군은 "고2 때 친구들과 '큰 모임'이란 걸 만들어 일상적인 고민부터 입시상담, 공부방법 나누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면서 "모임을 통해 동질감도 느끼고 해법도 공유한 덕분에 고3 수험기간에도 불안감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은 내신과 학생부(비교과), 자기소개서 등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쳐 선발하는데, 학부모도 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한다. 학부모들의 공감과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대안교육이 성공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 있는 엘리트층 자녀들이 많은데다, 교육청 지원을 받지 못하는 탓에 등록금이 일반 학교의 3배여서 '귀족학교'라는 말도 듣는다. 학교측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저소득층 등 대상 특별전형을 두고 있고, 다양한 재원 확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교장은 "관심은 고맙지만 아직은 이우학교의 성공을 말 할 단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 겨우 4회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어떻게 평가를 내리겠어요. 젊을 때의 혈기가 한 풀 꺾이고 세상에 길들여질 나이인 40대가 됐을 때도 이우학교 출신들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고 있다면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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