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보낸 네 차례의 이메일은 법원 수뇌부가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대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물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14일부터 세 차례 보낸 이메일은 촛불 재판의 신속한 처리를 종용하는 내용이다. 당시 촛불집회 재판은 박재영 판사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으로 미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엄상필 판사는 박 판사의 위헌심판 제청 다음날인 10월 10일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 보자"며 구속기소된 박석운 진보연대 위원장에게 보석을 허가했다.
이 같이 재판이 늦어질 조짐이 보이자 신 대법관은 판사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저의 소박한 의견'이라는 식으로 말투는 완곡했으나, 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 권한을 가진 법원장의 잇따른 '의견 표명'과 '당부'는 담당 판사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메일 첫머리에 '대내외비'를 강조하고, 편지를 받은 사람만 보라는 의미의 '친전'이라고 표시한 것도 '은밀한 압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메일의 정당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바라는 것이 법원장으로서의 정당한 권한 행사였다면 굳이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년씩 선고가 미뤄지는 다른 사건을 제쳐놓고, 왜 굳이 촛불 집회 사건에 대해서만 신속한 처리를 종용했는지 의문이다.
신 대법관이 이메일에서 "대법원장님 생각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힌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용훈 대법원장 역시 이번 파문에 휩싸이게 됐다. 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메시지'라면서 "법원이 일사불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위헌제청 사건 외) 나머지 사건은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었다.
압력의 주체가 서울중앙지법장이 아니라 대법원장이라는 의혹마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외적으로 그토록 사법권 독립을 강조해온 대법원이 자칫 스스로 일선 법관들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게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11월 24일 이메일 내용 중 "(헌재가 결정을) 연내에 끝내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 바 있다"는 표현도 신 대법관이 야간집회의 위헌 여부 결정과 관련해 의견을 전달하는 등 부당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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