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글로벌 쇼핑이 시작됐다. 볼보, 사브, 험머 등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들에 대한 본격적인 사냥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국영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아 무한 배팅에 나서고 있다. 사실상 '민관 합동' 전선을 구축한 셈이다. 때문에 세계자동차 업계에서는 "중국발(發) 대지각변동이 오는 것 아니냐"며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쏟아져 나오는 매물들
자동차산업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업종. 그러다 보니 유명 매물이 헐값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로 미국 업체들이 갖고 있던 브랜드들이다.
문제는 이들을 사들일 만한 여력이 있는 업체가 거의 없다는 점.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이나 일본 메이커들도 '제 코가 석자'라 인수합병(M&A)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남는 곳은 중국뿐. 경제위기의 충격이 비교적 적은데다 국가적 금융지원까지 받고 있어, 가장 강력한 매수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중국 합작파트너인 둥펑(東風)자동차는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내놓은 '사브' 브랜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둥펑측은 재무컨설팅회사 등을 통해 GM측에 인수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포드가 매각 대상에 올려놓은 '볼보' 인수를 놓고도 중국 2대 완성차 업체인 치루이(奇瑞)
자동차와 지리(吉利)자동차가 사실상 '안방'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지난해부터 1년 넘게 포드와 인수 협상을 벌이는 등 볼보 인수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리의 리슈푸 회장은 올 1월 미국으로 건너가 디트로이트 자동차 전시회 개최 중 포드 경영진을 만나 매각 의사를 직접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치루이자동차는 지난달 중국수출은행으로부터 100억위안(15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받아 포드사에 볼보 매입의사를 공식적으로 제의했다. 치루이로 가든, 지리로 가든, 한때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볼보는 이제 중국인 손에 넘어가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중국의 쓰촨(四川)기차와 둥펑도 GM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인 험머와 사브 브랜드 인수를 놓고 각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중 쓰촨기차는 험머브랜드 인수에 약 5억달러(7,300억원)를 투자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 자금은 중국 국책은행으로부터 융자를 통해 조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곱지 않은 시선
이처럼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글로벌 브랜드들을 싹쓸이 할 조짐이 보이는 것에 대해 세계 자동차 업계들의 반응은 좋지 않은 편이다. 중국자동차 산업의 부상 자체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뒤끝이 좋지 않은' 과거 전력 때문이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예전에도 해외브랜드를 인수해 기술만 빼간 뒤 헌신짝처럼 버린 적이 있다. 우리나라 쌍용자동차가 대표적인 경우. 중국 상하이(上海)차는 지난 2004년 쌍용차를 싼값에 인수해 SUV 관련 기술을 모두 이전 받은 뒤,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실상 철수를 선언함으로써 지금도 '먹튀' 비난을 받고 있다. 앞서 2000년초엔 난징(南京)자동차가 세계적 SUV 전문업체로 영국인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로버'를 사들인 후, 역시 기술력만 빼내가고 다시 매각한 바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중국메이커들은 항구적 경영 보다는 기술확보 차원에서 M&A에 나섰을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 인식이다.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업체들이 중국에 브랜드를 팔 경우 제2의 쌍용차나 제2의 로버처럼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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