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공업단지. 휴대폰, 반도체와 함께 국내 정보기술(IT) 수출의 한 축을 이루는 액정 화면(LCD)을 생산하는 곳이다. 핵심은 각각 축구장 6개와 8개 크기인 제 7공장과 제 8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높다란 천장이 압도하는 이곳에서 40~50인치대 TV용 LCD가 쏟아져 나온다.
LCD 생산은 물과 열의 싸움이다. 이는 제 7공장 지하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콘크리트 장벽이 늘어선 사이로 복잡한 장비들이 빼곡하게 들어찼고, 천장에는 색색의 굵은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장비와 파이프로 가득한 이 지하 공간이 바로 LG디스플레이 친환경 경영의 현장이다. 지상의 LCD 생산시설 못지않게 돈을 만들어 내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파주시가 공급한 공업용수를 LCD 생산에 필요한 초순수로 바꾸는 설비가 들어있다.
초순수란 미생물 등 불순물이 전혀 없이 순수한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물로, LCD와 반도체 제조공정에만 쓰인다. 일체의 불순물과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에서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초순수로 LCD용 원판 유리를 닦아낸다.
초순수를 외부에서 직접 사오면 엄청난 돈이 든다. 그래서 LG디스플레이는 공업용수를 자체 공정실에서 초순수로 바꿔서 사용한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하루 4만톤의 공업용수 가운데 초순수로 전환되는 양은 2만톤"이라고 설명했다.
LCD를 닦아낸 초순수는 그냥 폐수로 흘려버리지 않는다. 공장 지하에 가득찬 EDR이라는 장비를 통해 재활용수로 거듭난다. EDR은 물이 흘러갈 때 음, 양 전극을 가해 오염물질을 제거한다.
냉장고 서너 개를 합친 것만한 EDR 장비 32개가 하루 최대 1만8,000톤의 폐수를 재활용 처리한다. 이를 통해 LG디스플레이는 월 13억원 가량의 수도세를 절약한다. 천장에 색색으로 구별된 파이프들은 이처럼 초순수, 폐수, 재활용수를 각각 필요한 공정으로 실어 나른다.
물 뿐만이 아니다.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은 열도 재활용한다. LCD 공장은 제조 과정에서 뜨겁게 열을 받은 장비들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사용하는데, 냉각수 또한 폐수를 재활용해서 마련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판형 열교환기. 교환기를 통해 냉각수가 지나가면서 장비를 식히고, 대신 열을 흡수한다. 이를 위해 LG디스플레이는 2006년 국내 최대 규모의 판형 열교환기를 설치했다.
냉각수가 흡수한 열은 폐열 재활용 시스템인 히트 펌프를 통해 보일러처럼 필요한 공정에 다시 공급된다. 과거에는 액화천연가스(LNG)로 보일러를 가동해 열을 공급했다. 결과적으로 열이 필요한 공정을 위해 별도의 보일러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서 LNG 비용 절약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도 없다.
그래서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은 일반 공장처럼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친환경적이다. LG디스플레이는 판형열 교환기와 히트 펌프를 통해 월 100억원의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파이프로 실어 나른 폐수들이 최종적으로 만나는 곳은 단지 한 켠에 있는 만우천이다. 2006년 서울 청계천을 모방해 만든 만우천은 폐수들을 한 데 모아서 정화한 뒤 외부로 방류하는 실개천이다.
만우천은 2만마리 이상의 민물고기가 살 정도로 깨끗하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만우천은 낚시를 즐길 만큼 깨끗하다"며 "비가 많이 오면 외부 하천에서 다른 어종이나 물뱀 등이 타고 올라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2005년부터 에너지 절감 전문조직을 운영하고, 생산 공정에 필요한 육불화황(SF6) 가스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도록 감축 설비도 마련했다. 파주 공장에 설치된 중앙통제실은 각종 감지 센서와 폐쇄회로(CC) TV를 이용, 24시간 폐수 및 화학물질이 유출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같은 친환경 경영에 힘입어 지난해 국제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위원회로부터 탄소정보공개 리더십 지수 국내 1위 업체로 선정됐다. 또 같은 단체의 한국위원회로부터 탄소배출 절감 우수 업체에 수여하는 '바다상'도 받았다.
김동식 LG디스플레이 환경기술담당 상무는 "제품 생산, 판매, 서비스 등 국내외 모든 환경활동에 대해 저탄소 친환경 정책을 기업 경영의 주 요소로 삼아 적극 실천하고 있다"며 "에너지 사용 최적화를 통해 지구 온난화 방지 및 자원 소모 최소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정부의 '그린LCD' 정책방향은
정부의 그린 디스플레이 전략은 저전력 친환경 수요에 맞는 디스플레이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이코노-에코 LCD와 그린 PDP 개발을 서두르겠다는 전략이다.
이코노-에코 LCD는 소비전력이 기존 LCD 대비 절반 수준이어서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만족시키는 제품이다. 현재 업계에서 개발 중인 고효율 LCD 편광판이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밝기를 강화한 최적 설계 기술을 통해 휘도가 20% 정도 향상됐다. 또 도광판, 확산판, 위상차 필름, 편광판 등 핵심 부품을 하나로 합치는 일체화를 통해 두께도 초박형으로 줄였다.
업계에선 고효율 발광다이오드(LED) 백라이트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LED를 백라이트로 사용하면 선명한 색깔을 구현할 수 있으며 전력 소모도 적다. 정부는 고효율 LCD 편광판과 LED 백라이트를 통해 소비전력을 기존 LCD 대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 PDP는 고효율 전극 소재 기술을 개발해 전력 소모량을 최소화한 제품을 말한다. 정부는 업계와 함께 현재 수명이 긴 초미세 형광체와 신규 보호막 소재를 개발한 상태이며, 저전압 구동기술 등을 추가 개발해 소비전력을 30% 줄인다는 방침이다.
■ LG디스플레이의 그린제품
경기 파주시의 LG디스플레이 공장 내 연구소는 친환경 디스플레이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트랜스포머'라는 이름의 태양광 LCD. 이 제품은 LCD 뒤에서 화면을 밝게 비춰주는 백라이트가 없다.
대신 태양 등 자연광을 이용해 화면을 표시한다. 만약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등 태양광을 이용할 수 없으면 내장된 백라이트를 켜면 된다. LG디스플레이는 태양광 LCD를 9월께 노트북에 탑재해 선보일 예정이다.
태양광 LCD의 장점은 노트북 배터리 사용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백라이트를 사용하지 않는 만큼 배터리 사용시간이 연장된다. 연구소 관계자는 "태양광 LCD는 백라이트를 사용할 때마다 배터리를 4배 이상 오래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트북 뿐만 아니라 휴대폰용 태양광 LCD도 연내 개발할 예정이다.
'옵티멀 파워 콘트롤'(OPC)도 LG디스플레이가 연내 제품 개발을 목표로 연구하는 기술. OPC는 전력량을 최적화하는 제어 기술이다. 기존 LCD용 백라이트는 어떤 작업을 하든 무조건 전력이 흐른다.
그러나 OPC를 적용하면 작업을 하지 않을 때 백라이트가 자동으로 꺼져 전력을 아낄 수 있다. 또 TV의 경우 검정색 등 어두운 장면에서 백라이트의 밝기를 낮춰 전력 소모량을 그만큼 줄인다.
LG디스플레이 연구원은 "일반 42인치 LCD의 경우 전력 소모량이 160W인데, OPC는 검정색이 많은 화면일 경우 전력 소모량이 80W까지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는 노트북과 모바일용 제품을 개발할 방침이다.
할로겐, 비소 등 환경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그린 LCD도 개발 중이다. 지난해 각종 전선류와 부품에 들어간 할로겐 물질을 제거한 13.3인치 노트북용 LCD를 시작으로 모니터용 LCD를 생산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010년까지 모든 LCD를 그린 LCD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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