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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9> 한국의 지역감정과 미국의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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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9> 한국의 지역감정과 미국의 인종차별

입력
2009.03.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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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갈등은 미국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다. 어찌 보면 한국의 지역감정과 비슷한 것 같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지역감정은 한 핏줄에 역사와 문화가 같은 사람들끼리의 차이로, 사투리나 음식 양념이 조금 다를 뿐 엄밀히 따지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어떤 학자는 한국의 지역감정이 백제ㆍ신라시대로부터 내려온, 한반도에서 없어질 수 없는 고질 중 하나라지만 내가 보기에 지역감정은 주로 정치적 문제인 것 같다.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선거 때면 끄집어내는 나쁜 습관 같아 보인다.

나도 영남과 호남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지역감정은 없는 것 같다. 선거 때마다 호남 사람은 호남에서, 영남 사람은 영남에서, 심지어는 충청도까지 끼어 들어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공연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게 문제다.

심지어 당에서 공천을 줄 때도 호남 지역은 호남 사람, 영남 지역은 영남 사람에게 공천을 주고 충청도에서는 아예 새로 충청도 당을 만들어 선거에 이용한다.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나쁠 것이 없다. 이 정도의 지역감정은 결국 머지 않아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나는 믿는다.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2백년 전 남북전쟁 때 생긴 남북 간의 지역감정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공화당을 창설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게 앙심을 품고 무조건 반대당인 민주당에 100% 몸을 담은 예전의 남부 정치가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불과 15년 전, 남부 조지아주 출신으로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의 지도력으로 수많은 남부 출신들이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 그 결과 지금은 남부가 더 탄탄한 공화당의 텃밭이 됐고 링컨의 가장 강한 동맹이었던 북부 매사추세츠 주는 상ㆍ하원 의원들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흑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창당한 공화당을 등져서 미 의회에는 지금도 공화당 출신이 흑인 의원이 한 명도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다.

미국 내 인종 대립은 지난 250년 동안 뿌리 깊은 심각한 문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로 갑작스레 인종 문제가 사라진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만일 오바마 정권이 앞으로 4년 동안 경제정책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또다시 흑인 대통령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인종 문제는 어디에 그 심각성이 있는가.

우선 흑인 밀집지역에서 백인이 당선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전직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백인 제리 브라운이 흑인이 다수인 오클랜드 시장에 당선된 것은 그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흑인을 선호하는 연설을 해왔고 오히려 백인들마저 등을 돌렸던, 바로 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흑인이 집중해 사는 지역에서 아시아계가 의회에 출마해 당선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번에 뉴올리언스주에서 베트남 출신이 연방 하원에 당선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뉴올리언스주는 흑인이 90%에 이르는 도시로, 이 중 90% 이상이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민주당 출신인 흑인 현역 의원을 제치고 전혀 인지도가 없는 베트남계, 더욱이 공화당 출신이 당선됐단 말인가! 이는 현역인 흑인 제퍼슨 의원의 뇌물 스캔들 때문이었다.

벌써 몇 년째 뇌물 사건에 연루돼 걸핏하면 검찰에 불려 다니면서, 곧 유죄판결이 확실한 것으로 모두들 믿고 있는데도 끝끝내 고집을 부려 재출마한 것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본래 전통적으로 흑인 지역구이고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베트남계 공화당 의원이 재선될 확률은 거의 절망적이다.

이처럼 미국의 인종차별은 타 인종 배척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흑인 지역구는 흑인이 대표해야 한다는 이 관념이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 깊은 인종 문제는 여전히 그 뿌리가 깊다.

중남미 출신인 히스패닉계도 마찬가지다. 히스패닉이 아닌 타인종이 히스패닉계 밀집지역에서 당선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계는 히스패닉과 이상하게도 가깝다.

한인 타운에 집중적으로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들이 모여 있고,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 식품상에는 히스패닉이 점원의 대다수다. 그렇다고 해서 히스패닉이 언어도 다른 아시아계 후보를 자기네들을 대표하는 의원직에 선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결국 아시아계는 앞으로 미 주류사회 정치에 진출하려면 백인 지역구를 공략하는 수 밖에 없다. 백인 후보들과 백인 지역구에서 경쟁을 하자니 힘이 든 것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나도 백인 지역구에서 백인 후보들과 경쟁했다.

미국사회는 흔히 멜팅팟 (인종ㆍ문화의 용광로) 또는 샐러드 맙?샐러드 그릇)로 불린다. 여러 인종들이 섞여 사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이들은 주말이면 자기들 종교집단에서 모이고, 자기들 음식을 나누며 자기들의 신문ㆍ라디오 방송ㆍTV를 듣거나 보고 종종 축제를 열어 외부에 소개한다. 이런 수십 개, 수백 개의 작은 집단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뤄진 것이 미국사회다.

물론 백인이 과반수가 넘지만 남미 계통의 히스패닉계는 천주교 신앙에 의한 낙태 반대로 인구가 빨리 증가해 언젠가는 미 인구의 과반수가 될 것이란 인구통계가 심심치 않게 발표된다. 이들은 아시아계와는 달리 여러 나라 출신들이 합친 집단이지만 언어는 단 하나,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시아계들과 달리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다.

아시아계는 그 수가 흑인과 히스패닉계에 비해 훨씬 적은데다 생김새 외에는 언어와 풍습 등 공통점이 별로 없고 오히려 은근히 경쟁적인 대치 관계에 있다. 그러니 아시아계의 표를 집중적으로 얻기란 어렵다.

특히 아시아계는 자기 나라 출신들끼리가 아니면 모여 살지 않는다. 또 아시아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지만 제대로 단결이 되는 곳은 단 하나도 없다. 대부분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단체라고 말이 그렇지, 주로 중국인들이 주축이 돼 있다.

또 아시아계는 아시아계들 사이에서 서로 차별을 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계들의 미 의회 진출이 어려운 것이다. 이제 미국 땅에서 표면적으로는 아시아계에 대한 백인들의 인종 차별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한다.

이처럼 미국 땅 안에서도 한국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 차별은 사라진 반면에 교포사회는 아직도 호남 향우회, 영남 향우회 하면서 은근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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