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는 중상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니까요!"
2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사고 처리계. 김모 경사가 최근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 N씨에게 사고 처리를 위한 진단서 제출을 독촉했다. 하지만, 목이 아프다는 N씨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며칠째 진단서 제출을 미루고 있었다.
김 경사는 "피해자가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고 보상금을 더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시간을 끄는 것 같다. 중상해와 상관이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혀를 찼다.
종합보험 가입 운전자도 '중상해' 사고를 내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닷새가 지났지만, 일선 경찰서에서는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대검이 중상해 기준으로 주요 장기의 중대한 손상, 신체 중요 부분의 상실 등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보니 교통사고 당사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사고 신고도 늘고 있다.
일선 경찰서에선 대검의 중상해 기준 및 처리 지침 발표 후에 후속 세부 지침이 내려 오지 않자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며 답답해 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신체 중요 부분이라고 하는데, 그 대상이 뭔지 애매하다"며 "진단서도 인정이 안되니 구체적인 기준을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선의 혼란을 정리해야 할 경찰청 관계자도 "기소 관련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도 검찰의 세부 지침만 기다리고 있다"며 "대검의 지침을 시행하되, 애매한 사안은 검찰 지휘를 받으라는 지시만 내렸다"고 했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일선 경찰관들은 "인명피해 사고는 일일이 검찰 지휘를 받아야 될 판이서 업무량만 늘게 생겼다"며 하소연이다.
수서서의 한 경찰관은 "검사 지휘를 받으면 사건 처리가 예전보다 보름에서 한달 정도 늦어질 것"이라고 푸념했다. 강남서의 한 경찰관은 "중상해를 판단해야 할 애매한 사건이 없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경찰서에 접수되는 교통사고 신고 건수도 헌재 결정 이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헌재의 위헌 결정 전후 4일간 신고 건수를 비교한 결과, 용산서의 경우 위헌결정 전 24건에서 결정 후 36건으로, 강남서의 경우 72건에서 84건으로 늘었다.
한 경찰관은 "보험회사 처리로 합의를 보았던 가벼운 접촉 사고도 헌재 결정 이후에는 더 큰 보상을 염두에 두고 일단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다리를 다쳤다고 하는데 형사처벌 되는 것이냐", "보험처리를 해도 피해자가 자꾸 뭘 바라는 눈치인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등 문의전화도 쇄도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경찰도 헷갈리는데 민원인들도 당연한 것 아니냐"며 "피해자들도 혹시 보상이 더 있을까 싶어 보험 처리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한 뺑소니처리 전문 경찰관은 "헌재 결정 이후 가벼운 사고를 내고도 형사처벌이 두려워 뺑소니를 치는 사례가 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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