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30대 그룹의 신입사원 연봉을 최대 28% 깎겠다고 발표하며 그 근거로 제시한 한ㆍ일 임금 비교에 대해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노사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국경영자총협회조차 전경련 자료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 파문은 더 커지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달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발표문'을 내놓으며 참고 자료로 '대졸 신입사원 국제 비교'를 제시했다. 이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2007년 기준 대졸초임(월 급여)은 198만원으로 일본의 162만원, 싱가포르 173만원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실제 이런 전경련의 주장은 임금 삭감론의 가장 큰 논거가 됐다.
그러나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3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경련이 제시한 한국 기업의 대졸 초임은 기본급에 각종 수당과 고정 상여금을 포함한 총임금인 반면, 일본은 고정 상여금과 초과 근로수당 등이 제외된 정액 급여"라며 "비교 대상이 잘못됐고, 이 때문에 한국 임금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이 우리나라는 보너스를 포함한 액수로, 일본은 이를 뺀 액수로 비교했다는 얘기다.
파문은 4일 더 확산됐다. 전경련은 참고자료에서 자료의 근거를 2007년 11월 발표된 경총의 '임금조정 실태자료'라고 밝혔지만, 확인 결과 경총 자료와는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총의 '임금조정 실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7년 기준 대졸초임은 198만원으로 전경련 자료와 같지만, 일본은 192만원(연봉 292만엔을 당시 환율로 환산)으로 전경련이 밝힌 162만원과는 큰 차이가 난다.
경총 관계자는 "당초 경총 보고서는 한ㆍ일 모두 동일한 기준인 임금총액(기본금+각종 수당+고정 상여금)을 적용, 작성됐다"며 "그런데 전경련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임금은 경총 자료를 원용하면서도 일본 임금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자료를 갖다 쓴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통상 일본 경단련 임금 자료는 고정 상여금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특히 지난해 자료가 있는데도 원화가 강세였던 2007년 자료를 쓴 것도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신입사원 초봉은 203만원인 데 비해 일본은 263만원이었다.
전경련은 이에 대해 "상여금의 정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언급을 피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경련은 임금 절대액 비교보단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대졸 초임을 비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1인당 GNI 대비 대졸 초임은 우리나라가 1.3배로 일본 0.6배, 싱가포르 0.7배, 대만 0.6배보다 높다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그러나 전경련의 기준대로 중국의 임금을 계산하면 중국은 1인당 GNI 대비 대졸 초임이 2.1배를 넘는다. 김 소장은 "1인당 GNI 대비 대졸 초임으로 각국의 임금 수준을 비교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단 한곳도 없다"며 "전경련이 객관적인 수치까지 조작하며 무리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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