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한국 증시를 떠난 외국인은 좀체 돌아올 기미가 없다. 4일까지 무려 17거래일째 순매도. 무차별 '팔자' 공세로 코스피지수를 전 저점(938.75)까지 밀어냈던 지난해 10월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간간이 징검다리 매수로 존재를 알렸던 당시를 감안하면 최근 상황은 가히 '바이 코리아'(Bye Korea)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모두 짐 싸매고 떠나는 형국인데, 유독 남아있는 외국인이 있다. 아니 앞으로 매수 여력도 더 있다고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제 앞가림하기 바쁜 와중에도 한국사랑을 놓지않는 외국인은 '오일 머니'(Oil Money)로 불리는 중동 자금이다.
우리나라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보통 4개 지역으로 분류된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북미, 유럽, 헤지펀드의 근거지인 조세회피지역, 그리고 중동이다. 뭉뚱그려 외국인 투자자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우리나라 증시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지난해 '매도' 공세의 주력인 북미 자금은 2007년 4월 이후 쉬지않고 팔아치우고 있다. 우왕좌왕하던 조세회피지역 자금(헤지펀드)은 지난해 5월 순매도로 돌아섰다. 유럽 자금은 지난해 12월 1조원 어치 가까이 사들였지만 동유럽국가 부도 우려때문인지 흐름이 꺾였다.
반면 중동 자금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달까지 지속적으로 국내 주식을 사고 있다. 지난해 전체로 따지면 3조원 가까이 사들였다.
안전자산 선호를 부추기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중동만 비껴간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중동을 먹여 살리는 원유가격은 배럴당 140달러에서 40달러대로 뚝 떨어졌다. 예전엔 같은 양을 팔고 1,400원을 벌었다면 최근엔 400원밖에 못 챙긴다는 얘기다. 더구나 중동의 내로라 하는 국부펀드들은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회사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었다.
실제 '중동의 꽃' 두바이의 부채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10%(800억달러) 수준이며, 올해 갚아야 할 단기부채 규모도 150억달러로 추정된다. 국가 부도 가능성을 드러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역시 빨간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랍에미레이트연합(두바이 포함)을 제외한 중동 국가의 자금사정을 여전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등 다른 산유국은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최근 1년간 외환보유고가 20%가량 늘었고, 자산도 연 평균 6% 증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유 생산비용이 배럴당 10달러 수준이라 현재의 유가(40달러안팎)도 견딜만한 수준이다.
대신증권은 4일 "올해도 3조원 규모의 오일 머니가 우리 증시에 유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근거는 중동 자금의 투자비중 구성과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다.
중동 자금은 대개 유럽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지수 비중을 참고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7년 말 FTSE지수에서 한국의 비중은 1.4%, 중동 자금의 한국 비중은 0.7%다. 그만큼 추가 매수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승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도 3조원 가량의 중동 자금이 우리 증시에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며 "중동 국부펀드는 특히 주식 비중이 높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고 최근에도 주식 비중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증시의 하락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동 자금은 올 들어 최근까지 우리 증시에서 약 3,000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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